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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EQE 전기차 화재 논란..파라시스 배터리 신뢰 회복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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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잇단 전기차 화재의 원인은 정말 배터리 문제 뿐일까" 이런 의심이 드는 건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배터리 화재로 인한 열폭주 현상은 과학적으로 입증됐지만, 전기차 화재 원인이 배터리 불량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 1일, 인천광역시 서구 청라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 준대형 전기 세단 EQE 350가 불길에 휩싸였다.EQE 350의 배터리에서 발화한 불길은 주변 차량으로 삽시간에 옮겨붙었다. 화재는 8시간 만에 진화됐다. 이 불로 주민 103명이 대피하고 135명이 구조됐다.

주민 22명은 연기를 흡입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같은 층에 주차된 차량 40여 대가 불에 탔고, 100여 대가 그을음 등의 피해를 입었다. 화재로 인해 아파트 단지 내 수도와 전기 공급도 5일간 끊겼다. 한 대의 전기차에서 발생한 화재가 대형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화재가 발생한 벤츠 EQE 350은 3일 동안 주차된 상태였다. 충전 중이었던 상황도, 전원이 켜졌던 상황도, 별도의 충격이 차량에 가해진 상황도 아니었다. 가만히 있던 차량이 화마에 휩싸인 상황이다. 어쨌든 배터리 결함이 대표적 원인으로 예상된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이번 화재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소방 당국과 협조해 차량을 철저히 조사하고 사고 조사 원인 등에 대한 근본 원인을 파악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단순 전기차 화재로 넘어갈 것처럼 보였으나지난 5일 벤츠 EQE 전기차 화재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아무도 예상치 못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한 벤츠 EQE 350은 중국 배터리 업체 파라시스 에너지(Farasis Energy, 이하 파라시스)의 88.8kWh 용량의 NCM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었다.

한국 소비자는 벤츠 전기차에 CATL 배터리가 탑재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간 한국 소비자는 벤츠 전기차에 CATL 배터리가 탑재된다고 알고 있었다. 2022년 4월, 메르세데스-벤츠 크리스토프 스타진스키(Christoph Starzynski) 전기차 개발 총괄과 국내 언론의 인터뷰에서“EQE에 탑재되는 배터리는 중국 1위 배터리 제조사 CATL이 공급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이번 화재를 통해 EQE에 탑재되는 배터리가 CATL만이 아님이 밝혀졌다. 중간에 배터리 공급사가 바뀐 건지, 섞여서 사용된 건지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국내 벤츠 전기차 오너들은 벤츠코리아 측에 차량에 탑재된 배터리 제조사를 알려달라고 요구했으나벤츠코리아 측은 “배터리 제조사를 알려줄 수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와 한국 소비자 사이의신뢰 관계에는 상당한 금이 갔다.

메르세데스-벤츠와 파라시스 에너지는 2018년 손을 잡았다
중국 배터리 업체 파라시스는 2009년 설립됐다. 지난해 매출은 23억2000만 달러(한화 약 3조 1784억원), 출하량 15GWh의 실적을 내며 지난해 세계 8위 배터리 제조사가 됐다. 파라시스가 벤츠와 손을 잡은 건 2018년이다. 당시 파라시스는 벤츠 모회사 다임러와 10년간 170GWh 규모의 배터리 주문 계약을 체결했다.2020년에는 벤츠가 파라시스의 지분 3%를 인수해 배터리 공동 개발에 나섰다.

파라시스의 배터리 품질 문제는 지속적으로 지적됐다. 2021년 3월, 중국 베이징자동차그룹(이하 BAIC)은 배터리 결함으로 자사의 전기차 3만 1963대를 리콜한 바 있다. 리콜 사유는 ‘배터리 화재 위험’이었다. BAIC는 당시 “일부 차량의 배터리 시스템 밀도 차이로 인해 고온 환경에서 잦은 급속 충전이 배터리셀 성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며특정 환경에서 배터리 화재 발생 가능성을 언급했다. 당시 리콜 배터리의 공급사가 바로 파라시스였다.

국토교통부는 화재가 발생한 EQE 차량에 대한 제2차 합동감식에 돌입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자사의 전기차에 CATL 배터리가 탑재된다”고 밝혔을 뿐, 이후 소비자에게 타사 배터리 탑재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내연기관 자동차 시대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12V 축전지의 공급사를 밝히는 자동차 제조사는 없었다. 하지만전기차 시대는 다르다. 배터리는 전기차파워트레인의 핵심 부품이다. 같은 값을 주고 차량을 구매했는데배터리 공급사를 확인할 수 없다면 문제가 된다.

특히 한국 소비자는 전기차 배터리에 예민하다. LFP 배터리인지, NCM 배터리인지부터 LG 에너지 솔루션의 배터리인지, 삼성 SDI의 배터리인지 하나하나 고려한다. 차량 성능뿐만 아니라 안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부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당장 눈앞에 놓인 전기차 리콜뿐만 아니라향후 한국 소비자와의 신뢰 관계를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공급사를 밝히지 않을 이유가 없다. 투명한 것이 신뢰의 기본이라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상식이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8일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당국, 자동차안전연구원, 에너지화재연구소, 독일 벤츠 배터리 담당자 등 관련 분야 전문가와 함께 제2차 합동감식에 돌입했다. 향후 조사 결과에서 화재 원인으로 배터리 등 차체 결함 문제가 지목되면 리콜 명령을 내릴 계획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벤츠 EQE 세단에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된 차량이 국내에 3000여대 더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동민 에디터 dm.seo@cargu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