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신)유빈이 덕분에 좋은 시드를 받아서 4강행이 가능했다. 유빈이 같은 톱클래스 선수를 나라에서 더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여자탁구 베테랑 에이스 전지희(32·미래에셋증권·세계 14위)는 6일(한국시각) 파리올림픽 단체전에서 12년 만의 4강행을 이룬 직후 '걸출한 후배' 신유빈(20·대한항공·세계8위)을 향해 아낌없는 찬사와 애정을 보냈다.
오광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탁구 대표팀은 이날 사우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여자 단체전 8강에서 '난적' 스웨덴에 매치스코어 3대0으로 완승했다. 2012년 런던 대회 이후 12년 만의 단체전 4강 감격을 누렸다. '세계최강 복식조' 신유빈-전지희조가 1복식을 어김없이 잡아냈고, 이은혜(29·대한항공·세계 42위)가 2게임을, 전지희가 3게임을 잡아내며 가장 먼저 4강행을 확정지었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선수들의 표정이 환했다. 특히 2014년 태극마크를 단 후 세계선수권, 올림픽 단체전마다 번번이 눈물을 쏟아야 했던 '귀화 에이스' 전지희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 여자탁구는 이번 대회 중국, 일본에 이어 3번 시드를 받았다. 신유빈이 세계 8위, 전지희가 세계 15위에 오르며 유리한 시드를 배정받았고, 스웨덴보다 까다로운 상대인 홍콩이 16강 탈락하는 호재도 따랐다. 전지희는 "2014년부터 지금까지 대표팀 멤버로 있었는데 그동안 슬프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12년 만의 4강은)유빈이가 높은 랭킹을 따서 좋은 시드를 받은 것이 솔직히 크다. 전세계에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랭킹포인트를 딴 덕분에 이런 결과도 가능했다"고 말했다. "쉬워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11년간 대표팀에 있으면서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그래서 유빈이가 항상 너무 소중하다"며 감사를 표했다. "유빈이가 대표팀에 들어와서 대표팀이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유빈이는 좋은 에너지가 있다. 주위를 밝게 만든다"며 공을 돌렸다.
7일 중국과 4강에서 맞붙을 확률이 높다. 이기면 결승, 지면 동메달 결정전으로 간다. 전지희는 "솔직히 내 목표는 늘 메달을 따는 것, 더 큰 꿈은 결승에 올라가는 거였는데 쉽지 않았다. 그런데 유빈이와 함께 하면서 남아공더반세계선수권(은), 항저우아시안게임(금)에서 결승에 올랐다. 그러면서 내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고 털어놨다. "지금 4강 진출을 축하한다고 하지만 나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메달이다. 메달을 따내야 더 좋은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번 대회 남녀탁구는 6명(장우진, 임종훈, 조대성, 신유빈, 전지희, 이은혜)의 선수단이 파견됐다. 전체 선수단 쿼터가 적었고 대한체육회 금메달 종목으로 분류되지 않은 탓에 현장 스태프의 AD(경기장 출입증)지원도 원활하지 못했다. 펜싱, 유도 등 타종목이 많은 훈련파트너와 동행한 데 비해 탁구는 막내 국가대표 박규현이 혼자 파트너로 동행해 신유빈 등 선배들의 볼박스를 책임졌다.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이 현장에 스태프, 선수들을 위한 쉼터, 선수단 전용 차량을 마련하고 메달리스트에 비즈니스석을 공약하며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웠지만 AD 대란은 대다수 비인기종목 공통의 일이라 해결이 어려웠다. 중국, 일본 등 탁구강국들이 1대1 훈련 파트너를 데리고 현장에서 훈련하는 모습이 못내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여자대표팀 주장 전지희는 12년 만의 4강에 오른 후 이 부분에 대해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지난 10여 년간 한번도 보지 못한 모습, 아끼는 후배 신유빈을 위한 소신 발언이었다.
전지희는 "저희가 좀더 잘해서 AD카드가 좀더 나왔다면 좋았을 것같다. 개인트레이너나 파트너가 더 들어왔다면 좋았을 것같다. 유빈이는 이제 완전 톱클래스가 됐는데 지금 일본 선수들도 다 1대1 파트너와 훈련하고 있다. 부러운 걸 떠나 앞으로 유빈이를 어떻게 더 잘 지원하느냐가 올림픽 메달색을 바꾸는 일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일단 메달을 따면 지원이 더 좋아질 것이다. 메달을 좀더 따고 더 좋은 지원을 받도록 우리가 더 노력해야 한다"며 메달을 향한 절실함을 전했다.
신유빈은 이날 단체전 4강과 함께 혼합복식 동메달, 단식 4강에 이어 출전한 전종목 4강 위업을 달성했다. 이 사실을 언급하자 신유빈은 "정말요? 몰랐어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 못했는데 너무 좋다. 한경기 한포인트에 모든 걸 쏟고 있는데 많은 경기를 할 수 있는 자체가 너무 영광이고, 남은 경기에서도 내 모든 걸 쏟겠다. 내가 언니들을 믿은 것처럼 언니들에게도 믿음을 얻는 경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8일 중국과의 4강전을 앞두고 '중국 귀화 에이스' 전지희, 이은혜와 '세계 4강 톱랭커' 신유빈은 물러설 뜻이 없다. '세계 최강 복식조' 신유빈-전지희조로 1복식을 승부한 후 단식에서도 모든 걸 쏟아낼 생각이다. 전지희는 "복식은 유빈이와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고 단식은 유빈이의 활약을 기대하겠다"며 자신감을 전했다. 파리=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