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협회=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제 마음을 읽겠습니다."
29일, 서울 신문로의 축구회관에서 열린 홍명보 대한민국 축구 A대표팀 감독의 취임 기자회견. 홍 감독이 공식 기자회견에 앞서 종이 뭉치를 꺼내들었다. A4 용지 8장 분량에 달하는 취임사였다. 그의 취임사는 사과로 시작했다.
홍 감독은 "K리그 팬들과의 약속을 저버린데 대한 한없는 미안한 마음과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이 자리에 섰다. 특히 그동안 나에게 큰 성원을 보내주셨던 울산 HD 팬들께 사과와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 나는 울산 팬이 보야주신 뜨거운 응원과 전폭적인 지지 속에 다시 감독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선택이 팬들께 큰 상처와 실망감을 드렸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이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팬들께 사죄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7일 홍 감독을 A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K리그 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않았다. 홍 감독은 울산을 이끌고 '하나은행 K리그1 2024' 레이스를 치르고 있었다. 팬들은 시즌 중, 그것도 매우 갑자기 홍 감독을 잃게 됐다. 팬들의 목소리는 아쉬움을 넘어 분노와 비난으로 이어졌다. 홍 감독은 팬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팬들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았다.
이제 홍 감독은 A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새 도전에 나선다. 2026년 북중미월드컵, 2027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까지 팀을 이끈다. 홍 감독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는 자타공인 대한민국 축구 '레전드'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선 '캡틴'으로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뤘다. 2012년 런던에선 감독으로 한국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이끌었다. 홍 감독은 한국 축구 현대사 곳곳에 위대한 자취를 남겼다. 하지만 딱 한 번, 아쉬움이 있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이었다. 그는 A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월드컵에 출격했다. 결과는 조별리그 탈락이었다. 팬들의 아쉬움은 컸다. 그는 고개 숙이며 물러났다.
홍 감독은 10년 전 일을 사과했다. 그리고 당시의 교훈을 동력 삼아 긍정적으로 발전하겠단 각오를 다졌다. 홍 감독은 "10년 전엔 실패를 했다. 내가 아는 선수만 뽑아서 쓰는 '인맥축구' 얘기도 들었었다. 그건 다 인정한다. 내가 그 당시에는 K리그에서 단편적인 선수들만 뽑았다. 정말 팀에서 역할을 해야하고, 이름값은 없지만 팀에 정말 도움이 되고, 헌신하는 선수를 몰랐다. 그러다보니 '이번주에 해트트릭한 선수', '골 넣은 선수들'만 대표팀에 뽑았다. 그 힘을 받지 못했다. 그들이 언젠가는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쓰지 못하는 상황을 반복했다. 내가 정말 팀에 도움되는 선수를 뽑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지금은 K리그에서 3년 반 생활을 했다. 각 팀에 있는 주요 선수들, 주요 선수는 아니지만 대체할 수 있는 선수들의 리스트를 머릿속에 갖고 있다. 팀에 정말 헌신할 수 있는 선수, 지금 들어가면 경기를 바꿀 수 있는 선수 등의 이름이 있다. 10년 전과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이날 과거까지 청산했다. 부족했던 점을 인정하고, 앞으로 더 밝은 미래를 그렸다. 홍 감독은 "겸손한 자세로 더 듣고, 또 들으면서 한국 축구가 계속 전진하는 데 저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축구협회=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