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문지연 기자] 데뷔 40주년을 맞이한 배우 김희애(57)도 '발연기'를 각오했던 '돌풍'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돌풍'(박경수 극본, 김용완 연출)은 세상을 뒤엎기 위해 대통령 시해를 결심한 국무총리와 그를 막아 권력을 손에 쥐려는 경제부총리 사이의 대결을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 '황금의 제국', '펀치'를 쓴 박경수 작가의 신작이다. 김희애는 극중 차기 권력을 독차지하려는 야심가 경제부총리 정수진을 연기했다.
김희애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속에서 김희애는 완전한 악으로 향해가는 정수진을 남다른 내공으로 완성해냈다. 그러나 김희애는 "발연기까지 감수했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놓기도. 최근 스포츠조선과 만난 김희애는 "문어체 대사에 용어 자체도 너무 어려워서 읽기도 힘들었다"면서 "저는 이번에는 연기고 뭐고 간에 대사만 잘 전달하는 걸로 하자는 생각을 했다. '발연기라 들어도 좋다'는 생각. 무조건 딕션(발음)만 잘 전달하자고 마음 먹었다. 저도 남의 작품을 보면서 안 들려서 자꾸 앞으로 돌려보기도 했었는데, 이번에는 잘 전달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여기에 40년을 배우로서 활약했던 김희애의 반전이 하나 더 등장했다. '주목'보다는 '서포트'에 집중했다는 것. 김희애는 "제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예전엔 시청자 여러분이 제 연기를 잘 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시절도 있었고. 그 다음에는 모니터 앞의 감독님이나 스태프들이 제 연기를 만족하면 좋겠다로 변했다가, 제 앞에 있는 배우에게 최대한 연기를 잘 서포트해주면 좋겠다는 것으로 포커싱이 바뀌었다. 잘 봐주시면 물론 좋겠지만, 지금의 제 스탠스는 내 앞의 배우가 저로 인해서 더 연기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페이스메이커 같은 역할로, 제가 선배라고 해서 후배들이 위축되거나 경직되지 않고, 마음껏 제 연기를 디딤돌 삼아 잘 하는 것이 제가 할 일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김희애는 '아내의 자격', '밀회', '부부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을 이끌어왔던 대표적 배우다. 그러나 이번에는 철저히 설경구의 페이스메이커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김희애는 "그 양반(설경구)이 주전으로 열심히 뛰고, 제 마인드는 페이스메이커였다. 피니시라인은 어떻게 밟았는지 모르겠다. 설경구 씨는 제가 오랫동안 팬이었고,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고, 영혼을 가지고 연기하는 것처럼 연기를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분이 '돌풍'의 메인 캐릭터라면, 저는 그냥 그 사람의 어떤 서포트 같은 악역, 나쁜 악당 정도의 용도로만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자꾸 정수진에 감정 이입이 되고, '이 사람도 서사가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저도 자꾸 정수진에게 숨을 불어넣게 됐다"고 했다.
여성 정치인으로서 '끝'까지 가볼 수 있는 캐릭터도 많지 않은데, 그 역할을 김희애가 한다니 기대감도 차올랐다. 김희애 역시 정수진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처음엔 그냥 나쁜 여자, 나쁜 정치인, 박동호(설경구)는 좋은 사람인데, 정수진은 악당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래도 매력이 있었다. 그런데 악당이 아니라 피해자였고, 인간적이라는 생각에 점점 더 매력에 빠졌다"면서 "정수진, 너무 매력있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돌풍'을 통해 자기관리를 잘 해내고 있는 김영민, 이해영 등의 배우들에게 자극을 받았다는 김희애는 사실, 자타가 인정하는 '자기관리 끝판왕'이다. 작품을 위해 자신의 삶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김희애는 "저는 사실 화장품 모델도 해야 하고, 역할때문에도 식단, 운동을 했는데 자꾸 하다 보니 저에게 식단이나 운동이 외적인 피지컬을 위한 것이 아닌 것 같더라. 저에겐 하나의 루틴이 돼서 그걸 해야 살아있는 게 느껴지고, 그렇게 먹어야 맛있다. 엄격하게 먹는 것이 괴로울 것이라 생각하시는데, 그렇게 먹다 보면 간이 세거나 가공이 된 음식들이 싫어지게 된다. 닭가슴살도 얼마든 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게 내 음식이 되고 행복하고, 좋다. 운동도 물론 하기 싫지만 하고 나면 시원했다. 어떨 때에는 스트레칭만 삼십분을 하는데, 너무 시원해서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김희애다. 그는 "단순한 삶이 행복하다. 클린하게 해준다. 감정노동을 많이 하는 직업인데, 평소 생활도 드라마틱하고 기복이 있다면 힘들 것이다. 현실은 단순하고 심플하게. 그게 제 머리를 맑게 해준다. 저는 에너지가 좀 딸려서 일주일에 한 두 번 사람을 만나고, 나머지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야 충만해진다"며 웃었다.
문지연 기자 lunam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