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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것이 스피드만이 아니라면 심각한 문제, 고우석의 '멘탈'은 안녕한가[스조산책 M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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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마이너리그에서 고군분투 중인 고우석의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다.

마이애미 말린스로 이적해 트리플A 잭슨빌 점보슈림프 소속으로 던진 지 2개월이 지났다. 이전 소속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는 분명 메이저리그 계약을 했는데, 그의 신분은 여전히 마이너리거다. 언제 마이애미의 콜업 소식이 전해질 지 기약이 없다.

마이애미가 애초 고우석을 영입할 때 메이저리그에서 쓸 생각이 없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난 5월 5일(이하 한국시각) 마이애미는 연봉이 수 천만달러로 치솟은 타격왕 루이스 아라에즈를 샌디에이고에 보내고 대신 마이너리그 유망주 3명과 고우석을 받았다. 더블A 23세 외야수 제이콥 마시, 더블A 23세 1루수 네이선 마토렐라, 싱글A 19세 외야수 딜론 헤드 등은 샌디에이고에서도 꽤 주목받은 유망주들이다. 누가 봐도 고우석을 끼워넣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물론 고우석 뿐만 아니라 이들 3명의 야수들도 메이저리그 데뷔가 늦춰지고 있기는 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셋 모두 각각 싱글A와 더블A에서 타격이 신통치 않다. 당장 메이저리그로 불러 올릴 실력은 아니다.

그러나 고우석은 다르다. 즉시 전력으로 쓰기 위해 데리고 왔다면 벌써 빅리그 마운드에 섰어야 한다. 2년간 보장액 450만달러를 받는 선수를 아픈 것도 아닌데 2개월 이상 마이너리그에 방치하는 구단은 없다. 올해 연봉만 175만달러다.

마이애미는 올시즌에도 포스트시즌과는 상관이 없는 팀이다. '리빌딩'을 명목으로 하루하루 경기를 소화해 나가고 있다. 투타에 걸쳐 젊은 선수들에게 제대로 기회를 주고 체계적인 육성 비전을 갖고 시즌을 보내는지 알 수 없으나, 그 계획에 고우석이 들어있는 것 같지는 않다.

고우석은 내년 225만달러의 연봉을 받고, 2026년에는 300만달러에 상호옵션을 걸었는데 바이아웃은 50만달러다. 그런데 고우석은 지명할당 조치를 거쳐 40인 로스터에서 제외돼 마이너리거 신분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마이너리그 거부권은 의미가 없어졌다. 마이애미는 내년 225만달러 연봉을 그대로 지급하되 빅리그로 불러올리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런 규정을 염두에 두고 고우석을 빅리그 전력에서 제외했다는 점에서 향후 트레이드 또는 조건없는 방출을 배제할 수는 없다.

고우석은 올시즌 후 오프시즌 동안 여러 선택지를 놓고 고민할 것이다. 연봉이 보장된 만큼 계약대로 내년 시즌을 그대로 준비할 가능성이 있으나, KBO 유턴도 염두에 둘 수 있다.

문제는 고우석이 지금 트리플A에서 좀처럼 '자신의 공'을 던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 5일 샬럿 나이츠(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와의 경기에 구원등판해 1이닝 동안 솔로홈런 두 방을 맞고 2실점했다. 올해 미국 야구에 데뷔한 이후 한 경기에서 처음으로 피홈런 2개를 기록한 것이다. 홈런 하나는 커브가 가운데로 떨어지면서 맞았고, 다른 하나는 밋밋한 직구가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LG 트윈스에서 7년을 던지는 동안 354경기에서 딱 한 번 겪었던 2피홈런의 수모를 미국으로 건너간 뒤로는 4개월 만에 맛봤다. 트리플A 평균자책점이 4.29로 치솟았다. 빅리그 관계자들이 보기 민망한 수준이다.

기술적인 문제는 본인이 알겠지만, 직구 구속 감소는 그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LG 시절 153~155㎞ 강속구를 자유자재로 던졌던 고우석은 잭슨빌에서 최고 93마일(149.7㎞)짜리 직구도 버거워 보인다. 지난 5월 15일 내슈빌 사운즈(밀워키 브루어스 산하)전에서 찍은 95.7마일(154㎞)이 올시즌 최고 구속이다. 트리플A에서 평균 구속은 92.9마일인데, 이마저도 6월 이후에는 92마일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이날 샬럿전 직구 평균 구속은 92.2마일에 불과했다.

올시즌 메이저리그 불펜투수들의 직구 평균 구속은 94.8마일이고, 트리플A 불펜투수들은 93.6마일이다.

구속 저하의 원인이 적응력이나 시즌 준비 부족 때문이라면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지만, 노쇠화 또는 부상 때문이라면 상황이 호전될 가능성은 없다. 1998년 생이니 나이는 '논외'라고 봐야 하고, 결국 부상이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투구폼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구속 감소보다 사실 더 심각한 문제는 '멘탈'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클로저가 태평양을 건너 의욕적으로 시작해보려 했는데 개막로스터 탈락, 트레이드와 방출대기 등 예상치 못한 격동의 시간 속에서 '동기부여'를 찾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감과 의욕이 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를 버티고 여전히 강속구를 뿌린다면 희망이 보이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미국에서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해도 고우석은 돌아갈 곳이 있다. 내년 2월 이후에는 본인이 원하면 LG에 재입단할 수 있다. 언제가 됐든 '섭섭치 않은' 대우로 LG 유니폼을 다시 입게 될 것이다. 앞서 미국 야구를 경험한 거의 모든 '유턴파'들이 그랬다. 심지어 메이저리그에서 한 경기도 던지지 않고 돌아온 윤석민도 4년 90억원을 받았다.

내년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두고 볼 일이고, 마이애미가 올시즌이 끝나기 전 한 번은 부를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그때가 되면 뭐라도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