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척=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아, 그건 치는 순간 3루타라고 생각했어요."
간절함과 불꽃 같은 열정, 그리고 스피드만으로 똘똘 뭉쳤던 남자가 이제 실력까지 갖췄다.
롯데 자이언츠 황성빈은 23일 고척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5타수 3안타(3루타 1) 2득점으로 맹활약하며 팀의 10대2 승리를 이끌었다.
3회초에는 선두타자로 등장, 중전안타를 친 뒤 2루를 훔쳤다. 황성빈의 올시즌 30호 도루. 전반기 종료를 아직 9경기나 남겨둔 시점에 이뤄냈다.
지난 2년간과 가장 다른 점은 도루 성공률이다. 1군에 첫 데뷔한 2022년에는 도루 10개를 하는 동안 실패가 12개나 됐다. 지난해엔 성공 9개-실패 5개로 조금 나아졌다.
올해는 도루 30개를 하는 동안 도루 실패가 단 3개 뿐이다. 성공률이 무려 90.6%에 달한다. 도루 1위 두산 베어스 조수행(35개, 89.7%)보다도 높다.
경기 후 만난 황성빈은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해본 30도루인데…"라며 뭉클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이어 "30개 한 것보다 그 과정에서 성공률이 높았다는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조수행 형이 워낙 인정받는 선수기 때문에 '도루왕이 되겠다' 이런 생각보다는, 저도 주루엔 자신이 있으니까, 지금의 성공률을 유지하면서 개수를 늘리는게 목표"라고 했다.
김태형 롯데 감독이 '뛰지마라(레드라이트)'는 사인을 줄 때만 빼면 언제든 자유롭게 뛰어도 된다. 황성빈은 "점수차가 많이 벌어졌을 때 (내가 출루하면)뛰지 말라고 하신다. '성빈아 가지마라' 하신다"고 답해 좌중을 웃겼다.
"물론 투구폼이 엄청 짧은 투수가 나왔을 때도 있다. 다만 2아웃일 때는 성공하면 득점권에서 승부를 볼수 있으니까…(자주 시도하는 편)레드라이트가 그렇게 자주 나오진 않는다."
5회에는 우중간을 가르는 3루타를 쳤다. 황성빈은 "그건 3루다. 치자마자 3루 갈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올해 롯데 타선을 이끄는 윤동희는 1번타자 황성빈의 뒤에 나서는 2번 타순을 가장 선호한다. 올해 황성빈의 출루율이 4할을 넘는데다, 황성빈이 출루하면 누상에서 투수를 흔드는 능력이 워낙 탁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타석의 윤동희에 대한 투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이날 윤동희는 3안타 3타점을 몰아치며 타율을 3할5리로 끌어올렸다.
황성빈 역시 같은 마음이다. 그는 "감독님이 주시는 타순 어디든 나가는 건데, 그래도 1~2번이 가장 익숙하고 기분이 좋다"면서 "내가 나가면 좋은 타자들이 홈까지 불러준다. 좋은 시너지 효과"라며 활짝 웃었다.
타격은 거의 대격변 수준으로 달라졌다. 갖다맞추고 뛰기 급급했고, 안타의 대부분이 기습번트를 포함한 내야안타였다. 지금은 완전히 중심을 잡고 때려내는 타격폼으로 바뀌었다. 아직 규정 타석을 채우진 못했지만, 타율이 3할5푼4리에 달한다.
황성빈은 "타격코치님들이 저의 틀을 많이 깨주셨다. 김주찬 코치님, 임훈 코치님 덕분이다. 특히 임훈 코치님은 내가 백업으로 뛰고 있을 때 저한테 시간 투자를 엄청 하셨다"고 공을 돌렸다. ABS(자동볼판정시스템)을 믿고, 타석 박스를 가깝게 밟은 상태에서 먼 공에 손을 대지 않는게 달라진 타격의 비결이다.
이젠 전보다 한결 여유가 붙었다. 홈런 세리머니를 하며 돌아오는 선수에겐 더그아웃 앞에서 문지기 역할을 하는가 하면, 특유의 미소도 한층 밝아졌다.
"부진할 땐 팬들이 내 걱정을 많이 해주신다. 늘 날아다닐 순 없지 않나. 이제 오늘 못하면 내일 잘하면 된다. 이젠 전처럼 마음이 급하지 않다."
고척=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