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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벨' 울리지못한 벨 감독의 4년8개월,첫 외국인 감독의 명과 암...암울한 韓여축 1년간 대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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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콜린 벨 감독이 4년 8개월 만에 한국 여자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놨다.

대한축구협회는 20일 "4년 8개월간 여자 축구국가대표팀을 맡아온 콜린 벨 감독과 상호합의 하에 계약을 조기종료하기로 했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재임기간 동안 A매치 49경기 24승10무15패를 기록했다.벨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와 지난해 두 번째 연장계약을 했고 당초 임기는 올해 12월 말까지였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여자대표팀이 현재 새로운 도약을 위한 변화가 필요하며 그 준비를 지금부터 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고, 벨 감독 역시 '자신의 거취나 개인적 계획을 고려할 때 6개월 남긴 현 시점에서 계약을 마무리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협회는 "계약종료가 원만한 합의로 진행돼 위약금이나 잔여연봉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국 여자축구 사상 첫 외국인 사령탑인 벨 감독의 4년 8개월, 그는 한국 여자축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한국 여자축구는 얼마나 발전했을까.

벨 감독은 2019년 프랑스여자월드컵 조별리그 3전패 탈락 후인 2019년 10월 부임했다. 지소연, 조소현, 장슬기 등 소위 '황금세대'가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접어드는 시기에 부임, 세대교체의 소명과 함께 여자축구 혁신을 열망하는 팬들의 기대가 컸다. 그러나 부임 직후 코로나 팬데믹, 재택근무로 제대로 된 훈련, 경기가 이뤄지지 않았고 "느는 건 벨 감독의 한국어뿐"이라는 우스개도 돌았다.

성적면에서만 보면 2019년 EAFF E-1 챔피언십 준우승, 2022년 인도에서 열린 여자아시안컵 4강에서 '난적' 호주를 1대0으로 꺾고 역대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거둔 장면은 임기중 최고 성과로 볼수 있다. 또 벨 감독 부임 이후 국제 A매치 기간 여자 A매치도 정례화된 것도 큰 수확이다. 지소연은 "첼시에 있을 때 A매치 기간 다른 나라 선수들은 다 차출돼 나가는데 나 혼자 팀에 남아 있으면 부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우리는 A매치를 언제쯤 매번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속상했다"고 했었다. 벨 감독 부임 후 한국은 미국, 뉴질랜드, 베트남, 캐나다, 자메이카, 잠비아, 아이티, 체코, 포르투갈, 필리핀 등과 총 20회의 A매치를 치렀다. 미국, 캐나다 외엔 강호 아닌 약체들과의 맞대결이라 A매치 실효성을 두고 비판도 일었지만 그럼에도 여자축구 선수들은 A매치 기간에 A매치가 성사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분위기였다. 협회 눈치 보지 않고 할 말 하는 외국인 감독의 장점으로 보는 시각도 지배적이었다. 지소연은 지난 4월 필리핀전 직후 "A매치 기간 경기가 없다는 건 조롱거리가 될 수 있는 상황이고, 무시당할 수도 있다. 시대가 그만큼 변했다"고 했다.

이 밖에 선수들에게 기술 못지 않은 '고강도' 체력의 중요성을 각인시킨 것,'16세' 케이시 유진 페어를 월드컵에 발탁하고 추효주, 최유리 등의 성장을 이끈 것 역시 벨 감독의 공적이다.

그러나 큰 그림에서 보면 아쉬움이 크다. 2019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조별리그 3전패로 탈락한 뒤 여자축구 첫 외국인 감독인 벨 감독을 선임할 때 기대했던 부분은 채워지지 않았다. 2023년 호주-뉴질랜드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한국은 더 높아진 세계의 벽을 절감했다. 콜롬비아(0대2패), 모로코(0대1패)에 연패한 후 독일과 1대1로 비기며 '승점 1점, 한 골'에 만족해야 했다.

2019년 7월 20위였던 랭킹은 2024년 6월에도 여전히 20위다. 한국 여자축구의 최고랭킹은 2017~2019년 윤덕여 감독 재임기의 14위, 벨 감독 재임기 최고 랭킹은 2022년 12월의 15위다. 제자리걸음이다. 아시아권 순위는 일본(7위), 북한(10위), 호주(12위), 중국(19위)에 이어 5위다. 모두가 발전하는 시기에 제자리걸음은 결국 퇴보다.

아시아 무대에서조차 한국 여자축구는 뒷걸음질 중이다.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 8강에서 북한에 1대4로 대패하며 2010년 광저우, 2014년 인천, 2019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 3연속으로 획득한 동메달을 놓쳤다. 간절했던 첫 올림픽의 꿈도 무산됐다. 지난해 11월 파리올림픽 아시아 2차 예선에서 한국은 북한, 중국, 태국과 함께 죽음의 조에 편성되며 1승2무로 분전했지만 북한에 조1위(2승1무)를 내주며 파리올림픽 티켓을 내줬다.

잉글랜드, 독일 톱클럽 사령탑을 역임한 벨 감독은 WK리그와의 소통, 학원축구와의 상생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호주-뉴질랜드월드컵에서 2연패 후 연일 WK리그, 한국 여자축구 전반적인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새겨들을 부분도 있었지만 초중고-WK리그-대표팀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5년차 대표팀 감독'이자 연령별 대표팀 어드바이저인 본인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외국인 감독이기 이전에 재계약까지 한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소명의식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비판의 시점이 적절치 않았던 탓에 현장에서 묵묵히 헌신해온 일부 국내 지도자들이 등을 돌렸다. 향후 외국인 감독을 영입할 경우 국내 지도자, 국내 리그에 대한 존중과 현장과의 소통 능력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는 교훈을 준 장면이었다.

과거 윤덕여 감독이 2015년 캐나다월드컵 사상 첫 16강 진출 후에도 재계약 여부를 두고 속을 끓인 데 비해 벨 감독은 호주-뉴질랜드월드컵 전에 이미 재계약에 성공했다. 항저우아시안게임 메달 불발, 파리올림픽 본선행 불발 후에도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한 경기에 일희일비, '파리목숨'으로 전락한 국내 지도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대한 대우였고, 남자 A대표팀에 비해 여자축구에 무심한 대중과 미디어의 침묵이 유리하게 작용한 사례다.

지난 4월 필리핀과의 A매치 2연전(3대0승, 2대1승), 6월 미국과의 A매치 2연전(0대4패, 0대3패)이 벨 감독과 여자축구대표팀이 올해 치른 경기의 전부다. 내년 7월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챔피언십까지 대한민국 여자대표팀은 공식 대회도 일정도 없다. 7월 A매치 기간에도 경기는 없다. "한국 사랑해요"를 외치던 외국인 감독은 4년 8개월만에 홀연히 떠났다. 요즘 말로 '월급루팡(제대로 일하지 않고 월급을 타가는 사람)'이 될 뻔한 상황에서 위약금 없이 계약이 종료됐단 데 안도해야 할까. 이제 대한민국 여자축구의 미래는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남자축구 못지않게 여자축구 새 사령탑 선임에 힘을 쏟아야할 시점이다. 2026년 여자아시안컵, 2027년 브라질여자월드컵이 다가온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