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2021년 6월13일(이하 한국시각), 전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파르켄 스타디움에서 열린 덴마크와 핀란드의 유로2020 조별리그 B조 1차전 전반 42분, 갑자기 덴마크의 슈퍼스타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쓰러졌다.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의식을 잃었다. 심각성을 파악한 선수와 심판은 의료진을 긴급 투입했다. 응급조치가 이뤄지는 동안 일부 스태프와 선수들은 에릭센의 모습을 팬과 중계카메라가 잡지 못하도록 가렸다. 심폐소생술(CPR)을 받은 뒤 병원으로 이송된 에릭센은 천만다행으로 의식을 되찾았다. 주변의 응원 속 회복에 나선 에릭센은 심장 제세동기 삽입수술을 받았다.
에릭센은 자타공인 덴마크의 에이스였다. 아약스에서 데뷔한 에릭센은 넓은 시야와 탁월한 기술을 앞세워 단숨에 주목 받는 선수가 됐다. 2013년 여름 토트넘이 영입했다. 에릭센은 토트넘에서도 공격의 조타수로 맹활약을 펼쳤다. 특히 손흥민-해리 케인-에릭센-델레 알리가 이룬, 이른바 'DESK 라인'은 찬사를 받았다. 중소 클럽 토트넘을 단숨에 빅클럽 반열에 올려놓았다. 토트넘은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올랐다. 재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심장 이상은 치명적이었다. 모두가 끝났다고 했다.
포기는 없었다. 에릭센은 '심장 제세동기를 달고 경기에 뛸 수 없다'는 세리에A 규정에 따라 2021년 말 인터밀란과 계약을 해지 했다. 은퇴수순을 밟는 듯 했지만, 현역 연장을 모색하던 그에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하위권팀은 브렌트포드가 손을 내밀었다. 꾸준히 몸을 만든 에릭센은 259일만에 복귀전을 치렀다. 이후 선발로 복귀한 에릭센은 특유의 클래스를 과시하며 브렌트포드의 핵심 미드필더로 거듭났다. 심장 문제를 털어낸 에릭센에게 거칠 것이 없었다. 반년간 11경기에서 1골-4도움을 기록했다. 전성기 못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중원에 창의성을 더해줄 미드필더를 찾던 명가 맨유가 에릭센에 러브콜을 보냈다. 에릭센은 2022년 여름 맨유 유니폼을 입으며, 다시 한번 정상에 섰다. 에릭센은 다소 부침 있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2시즌 동안 72경기에서 3골-13도움을 기록하며 건재를 알렸다.
에릭센은 2022년 3월 네덜란드와의 경기를 통해 A대표로도 복귀했다. 9개월만의 복귀였다. 카타르월드컵에도 나선 에릭센은 유로2024 예선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팀을 본선으로 올려놓았다.
3년만에 돌아온 유로 대회, 에릭센은 마지막 트라우마마저 날렸다. 에릭센은 17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아레나에서 열린 슬로베니아와 유로2024 조별리그 C조 1차전에 선발출전해 풀타임을 소화했다. 전반 17분에는 요나스 빈의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터트렸다. 팀은 후반 32분 에릭 얀자에게 동점골을 내주며 아쉽게 1대1로 비겼다.
출전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깊은 경기였지만, 에릭센은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1100일만에 다시 밟은 무대에서 패스 성공률 87%, 활동량 11.7㎞를 기록하며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에릭센은 유럽축구연맹(UEFA)으로부터 경기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해피엔딩이었다.
슬로베니아전을 마친 뒤 에릭센은 "이번 유로대회에서 나의 이야기는 지난 번과 아주 다르다"며 "경기에 자신감이 있었고,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유로대회는 항상 특별하다"고 밝혔다. 이어 "유로대회에서 득점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 마음은 오로지 축구뿐이었다. 단지 내 골로 팀을 도울 수 있어 행복했다"는 소감을 남겼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