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성원 기자]'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김영권(34·울산)과 김민재(28·바이에른 뮌헨)가 한꺼번에 빠진 대한민국의 센터백 라인은 다소 생소했다. 김민재는 왼발목 부상으로 한국 축구 A대표팀에서 제외됐다. 지난 1월 카타르아시안컵 출전으로 '오프시즌'없이 강행군을 계속해 온 김영권은 쉼표가 필요했다.
김영권이 A대표팀에 제외되자 가장 크게 안도한 인물은 홍명보 울산 HD 감독이다. 홍 감독은 '애제자'의 휴식에 반색했다. 그는 "영권이는 지난해 휴식이 없었다. 올해도 아시안컵으로 쉬지 못했다"며 "영권이에게 실망보다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얘기했다. 9월 A매치 더 중요한 대회(3차예선)가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김영권은 A대표팀 제외에 만감이 교차했다. 그는 2010년 8월 11일 나이지리아와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했다. 어느덧 1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이 김영권이 걸어온 역사다. 월드컵에선 2014년 브라질, 2018년 러시아에 이어 2022년 카타르까지, 단 1경기도 쉼표가 없었다. 무려 10경기 연속 선발 출전했다.
부상이 아닌 상황에서 A매치에 부름을 받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험하지 못한 김영권의 'A매치 기간'이 궁금했다. 그래서 물었다. "휴식도 갖고, 체력훈련도 하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운동을 계속했다. 그냥 좀 너무 오랜만이긴 하지만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목소리가 밝았다.
김영권은 싱가포르(7대0 승)와 중국전(1대0 승)을 응원하며 모두 지켜봤다고 했다. 그는 "직접 뛰는 것보다 밖에서 보니 또 다르더라. 불안한 감정도 느껴봤다"고 웃었다. 'A매치 휴식기'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김영권은 "시즌 초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일정이 바뀌었고, 아시안컵이 1월말 끝나면서 쉴새없이 달려왔다. 훈련 부분보다 경기에 모든 포커스가 맞춰지다보니 힘든 부분도 있었다"며 "다른 선수들에 비해 나이도 있고, 그렇게 달려오다보니 경기력 문제도 나왔다. 지금은 좋은 타이밍에서 잘 쉬어 가는 것 같다"고 했다.
올 시즌 초반 결정적인 실수로 도마에 올랐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그는 A매치 브레이크전 전북과의 '현대가 더비'에서 최고의 경기력으로 상대의 칼끝을 무력화시켰다. 울산은 견고한 수비라인과 후반 추가시간 터진 엄원상의 극장 결승골읖 앞세워 1대0 승리했다. 그는 시즌 초반 제기된 채찍에 대해 "팬분들과 동료들에게 죄송했지만 스스로 무너지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걱정해주는 것이 싫기도 했다. 세계적인 센터백도 다 실수한다. 어떻게보면 더 잘하라는 의미가 아닐까라고 넘겼다. 편안하게 마음을 가졌다"고 고백했다.
'만년 2위'의 설움을 털어내고 울산이 구단 창단 후 첫 K리그1 2연패를 달성한 데 김영권의 지분도 명확히 있다. '우승 제조기'였다. 그는 2022년 K리그에 둥지를 튼 후 두 시즌 연속 정상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MVP(최우수선수상)도 거머쥐었다. 울산은 전북전에서 K리그1 1위를 탈환했다. 그 또한 '왕조의 시작'인 3연패를 향해 달리고 있다.
"작년, 재작년처럼 독주 느낌은 아니지만 우승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승할 수 있는 팀은 울산 뿐인 것 같다. 당연히 우승을 만들어 가는 과정 중에 어려움도 있겠지만 우리는 충분히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왜 우승하지 못하는지가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다. 확실한 건 올해 팀적으로 더 똘똘 뭉쳐있다."
카타르월드컵 후 그는 자신의 축구시계가 '70분'에 와 있다고 했다. 다시 그 질문을 했다. "지금은 78~9분 정도된 것 같다. 경기 수가 빡빡하면 회복하는 데 힘들 수 있지만, 정상적으로 경기 뛰는데는 전혀 문제없다."
김영권은 A매치 111경기 출전을 기록 중이다. 그는 "스스로 정한 것은 없다. A매치 50경기 정도 뛰었을 때 목표가 홍 감독님이었다. 하지만 그건 많이 힘들 것 같다"고 웃었다. 한국 축구의 전설인 홍명보 감독은 국내 선수 A매치 최다인 136경기 출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꿈을 포기한 건 아니다. "몸 관리를 더 잘 해야죠"라는 말에 더 큰 에너지가 느껴진다.
김영권의 시계는 지금 이 시각에도 제대로 흘러가고 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