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대한민국이 온통 붉게 물들었던 2002년 6월 4일, '황새' 황선홍은 폴란드와의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개막전에서 한국의 4강 신화의 발판을 놓는 결승골을 넣었다. 34세의 늦은 나이로 넣은 이 골은 '황새'의 커리어 마지막 A매치 골이자 개인통산 50호골이었다. A대표팀 최다 득점자인 '차붐' 차범근 전 감독의 58골(136경기)과 황선홍 현 대전하나 감독의 50골은 깨트리기 어려운 '위대한 기록'으로 자리했다.
강산이 두 번 변한 뒤에야 역대 세 번째로 50골 고지에 오를 주인공이 탄생할 조짐이다. 차 전 감독이 애지중지한 대표팀 캡틴 손흥민(토트넘)이 지난 6일 싱가포르와의 2026년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C조 5차전서 멀티골로 A매치 통산 득점을 48골(126경기)로 늘려 황 감독의 기록을 2골차로 추격했다.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중국과의 2차예선 6차전에서 두 골을 넣는다면 황 감독과 동률을 이루고, 해트트릭을 작성한다면 통산 득점 2위로 올라선다. 황 감독은 A대표팀에 데뷔해 50골을 기록하기까지 4929일이 걸렸다. 손흥민은 그보다 18일 앞선 데뷔 4911일째에 중국전을 치른다. '차붐'은 데뷔 1948일만에 50호골을 달성했다.
손흥민은 2019년 3골, 2021년 4골, 2022년 5골, 2023년 6골, 2024년 7골(6일 싱가포르전 현재)로 나이가 들수록 농익은 득점력을 뽐내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최근 A매치 13경기에서 11골, 싱가포르전 멀티골을 포함해 최근 3경기 연속골을 넣을 정도로 기세도 좋다. 2023~2024시즌, 토트넘 소속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17골을 쏜 '월드클래스' 기량을 최근엔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도 펼쳐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 원정경기에서 2골로 3대0 승리를 이끈 손흥민에게 또 한 번의 중국전 멀티골을 기대해도 좋은 이유다. 중국전에서 50골 고지를 밟지 못하더라도 황 감독, 나아가 현재 10골 차이인 차 전 감독의 최다골 기록 경신은 시간문제다. 이르면 내년, 늦어도 내후년에는 새 역사를 쓸 가능성이 크다.
손흥민은 통산 득점뿐 아니라 최다 출전 기록까지 모조리 경신할 수 있다. 2010년 12월 30일 인도전을 통해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손흥민은 지난 싱가포르전 출전으로 A대표를 지낸 기간을 13년159일로 늘려 차두리 전 대표팀 코치(13년143일)를 넘어 최장 기간 출전 순위 7위로 점프했다. 최장기간 1위인 이동국(19년112일)은 여전히 멀리 떨어져있지만, 5위 황선홍(13년349일), 4위 차범근(14년34일), 3위 김남일(14년182일)의 기록은 가시권에 있다. 손흥민이 중국전에 출전할 경우 이영표(127경기)와 최다 출전 공동 4위로 올라선다. 3위 이운재(133경기)와는 6경기, 공동 1위 차범근 홍명보(이상 136경기)와는 9경기차가 된다. 큰 부상없이 현재 기량을 유지하면 내년에 '한국에서 A매치를 가장 많이 뛴 선수, A매치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로 동시에 등극할 수 있다. 13년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벌어진 대표팀 차출 거부 소동 때 앳된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던 소년은 이젠 베테랑이 되어, 한국 축구 정상을 넘보고 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