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112구 중 59구, 8구 연속 바깥쪽 슬라이더. 사령탑마저 아연실색한 에이스의 집착은 커리어 최악투라는 결과를 낳았다.
28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 롯데 자이언츠 박세웅은 4⅔이닝 11피안타 10실점(9자책)으로 무너졌다.
2014년 프로 데뷔 이래 한경기 최다 실점이란 불명예스런 경기가 됐다. 종전 최다 실점은 커리어 초창기였던 2016년 8월 26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기록한 9실점(3이닝)이다.
10실점 중 8실점이 악몽 같았던 5회 한 이닝에 내준 점수다.
1회 허용한 선취점이나 3회 페라자에게 내준 홈런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반면 5회는 말 그대로 홀린듯 했다. 커리어 내내 고전 중인 독수리 공포증, 대전 징크스라고밖엔 설명하기 힘들 정도. 경기 후 박세웅의 한화전 통산 평균자책점은 8.51, 대전 평균자책점은 9.00까지 치솟았다.
박세웅은 자타공인 리그 수위권의 토종 에이스다. 바로 직전 경기인 KIA 타이거즈전에선 8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고, 올시즌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가 6번이다. 하지만 한화를 만나거나 대전에 가면 '1이닝 1실점' 투수로 바뀐다는 뜻이다.
이날 유독 불방망이를 휘두른 페라자에 대한 트라우마마저 엿보였다. 같은 편 타자들마저 흔들릴만한 에이스의 난조였다.
이상하리만큼 바깥쪽 슬라이더에 집착했다. 이순철 해설위원도 "너무 바깥쪽 슬라이더로만 승부하고 있다. 한화 타자들이 힘들이지 않고 툭 갖다맞춰서 안타를 만든다"며 의아해했다.
이날 직구 구위가 나빴던 것도 아니다. 최고 구속은 150㎞까지 나왔고, 4회까지의 경기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제구가 다소 뜨는 느낌은 있었지만, 슬라이더 중심에 직구와 커브, 포크볼을 적절하게 섞어던졌다. 롯데 타선도 힘을 내며 3득점, 승부를 뒤집었다.
문제의 5회말조차 시작은 버틸만했다. 안타 2개와 볼넷으로 무사 만루 위기를 맞이했지만, 안치홍의 애매한 투수땅볼을 홈 아웃으로 잘 처리했다.
1사만루 채은성 타석부터 '슬라이더 집착'이 시작됐다. 채은성에게 던진 6구가 모두 135~140㎞ 사이의 슬라이더였다. 그 결과는 밀어내기 볼넷. 뒤이어 이도윤에게 밀어내기 몸에맞는볼까지 내줬다.
그리고 최재훈에게도 슬라이더 일변도를 고집하다 적시타를 허용했고, 황영묵 장진혁에게 연속 적시타, 김태연에게 희생플라이를 내준 공도 모두 슬라이더였다. 교체전 마지막 타자였던 페라자에게도 커브와 슬라이더를 던지다 또 안타를 맞은 뒤 결국 교체됐다.
5회 박세웅의 투구수는 총 40구. 그중 25구가 슬라이더였다.
포수가 말릴순 없었을까. 유강남이 옆구리 통증으로 빠지면서 이날 마스크는 신예 손성빈이 썼다. 정황상 박세웅의 볼배합을 말리기 어려웠을 수 있다. 백업 포수 서동욱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도 김태형 감독은 박세웅의 이같은 투구패턴을 지적하곤 했다. "공이 좋으니까 타자랑 붙으면 되는데, 너무 코너워크를 신경쓰다 볼넷을 주고 스스로 무너진다"는 것.
하지만 이날은 또 달랐다. 한주의 시작을 알리는 화요일 선발임에도 롯데 벤치는 박세웅을 쉽게 바꾸지 않았다. 5회까지는 책임지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무려 112구를 던지고도 5회가 끝나지 않았고, 결국 투수교체가 이뤄졌다. 다음 투수는 불펜 핵심 투수 중 한명인 한현희였다. 김태형 감독도 예상치 못했다는 반증이다.
이날 경기 전까지 롯데는 한화와 승차 없는 9위를 기록중이었다. 승리시 한화를 누르고 8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한화가 사령탑-대표 동반 사임의 혼란에 빠진 상태라는 점도 플러스요인이었다.
하지만 에이스의 멘탈 붕괴가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 롯데는 이날 패배로 중위권 도약은 커녕 다시 꼴찌로 추락했다.
대전=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