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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수학 풀면 교육이고 공 차면 노는 건가요" → '운동하는 학생' 정책은 왜 성공하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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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수학 선생님하고 문제 풀면 교육이고 체육 선생님하고 공 차면 노는 것인가요." 한 체육교사의 한탄에 서운함이 묻어났다. 우리 '학교체육'이 표류하고 있다. 평범한 청소년들의 체육 수업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났다. 청소년 비만율이 증가하고 신체능력은 저하됐다는 데이터가 수두룩하다. 원인은 복잡하다. 스마트폰이 운동장을 대체했다. 학생들의 욕구는 과거에 비해 훨씬 다양해진 반면 현장 인력과 프로그램은 보강되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의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청소년들의 신체, 정신건강에 경고등이 켜지며 심각성이 부각됐지만, 학교체육 부재는 이미 뿌리 깊었던 문제다. 많은 유·청소년들이 학교 내 체육 활동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

경인고에서 체육을 지도하는 이윤희 교사는 "전반적으로 신체능력은 크게 떨어졌다"고 했다. "한 반이 30명이라고 하면 10명 정도가 중학교 때까지 아예 아무런 운동도 하지 않은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한국비만협회가 202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소아청소년(6~18세)의 비만율은 10년 사이에 9.7%에서 19.3%로 2배 이상 늘었다. 남학생의 경우 10.4%에서 25.9%로 폭등했다. 연도별 팝스(PAPS·학생건강체력평가) 결과를 살펴보면 문제가 확연하다. 초등학생 기준 윗몸일으키기의 경우 2013년 평균 73.3개에서 2022년 61.1개로 감소했다. 서울 강동구 소재 초등교 교사 임소미씨(가명)는 "5~6학년 팝스 기준으로 3등급 미만이 절반은 된다"고 우려했다. 3등급이 '보통', 4등급이 '낮음', 5등급이 '매우 낮음'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체육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25년째 체육을 맡아온 부천중 정윤교 교사는 "하고자 하는 아이들은 더 늘었다"고 했다. 환경 영향이 매우 크다. 인조잔디가 깔리고 우레탄 농구코트까지 갖춘 운동장이 하나 둘 생겼다. 정윤교 교사는 "여건이 갖춰지면 아이들은 체육 활동을 더 원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 학교 이야기다. 대부분 강당을 짓거나 해서 운동장을 줄이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학령 인구가 줄면서 넓은 운동장이 불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졌다. 3월에는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운동장에 급식실을 지으려다 반대에 부딪혀 백지화된 사례가 있다. 청소년들을 지도할 교사도 증원이 시급하다. 정교사는 "전문적으로 이들을 봐 줄 인력이 없다. 방과 후에 아이들을 관리할 사람이 부족하다. 밤이 되면 생활지도가 안되기 때문에 집에 보내야 한다. 체육교사 입장에선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체육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어디로 갈까. 사교육 아니면 게임이다. 이윤희 교사는 "기본적으로 '놀이'를 싫어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예전 청소년들이 몸을 쓰는 놀이를 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게임을 한다. 이런 형태로 스트레스를 풀다보니 몸을 잘 못 쓰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양극화도 심해졌다.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사교육'으로 빠진다. 비용을 더 부담하면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다. 임소미 교사는 "목마른 아이들이 많아졌다. 잘 하고 좋아하는 아이들은 시간과 돈을 따로 내서 학원을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학교체육 교육이 붕괴된 후 학생들의 스포츠 소비 행태에 양극화 현상이 크게 나타났다. 공부만 아니라 스포츠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한다.

'체력 저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팝스'라는 기계적 기준으로 학생 체력을 줄세우는 방법 자체에도 물음표가 붙는다. 정윤교 교사는 "예전과 비교해 활동 자체가 바뀌었다. 요즘은 오래달리기, 팔굽혀펴기, 윗몸말아올리기 같은 운동을 따로 하지 않는다. 한두 달 연습해서 측정하면 잘 나올 것"이라며 밖에서 보는 것처럼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윤희 교사도 "우리때야 축구나 농구정도 했지, 이제는 탁구, 배드민턴, 격투기, 수영, 롱보드 등 다양한 종목을 접하고 있다"고 했다.

체육수업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과 제도 개선이 필수다. 체육도 엄연히 수학, 영어처럼 교과목 중 하나다. 일본은 어릴 때부터 교내 '부카츠(동아리)' 활동을 통해 운동 종목 하나는 꼭 연마하도록 하는 '1인1기'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윤희 교사는 "스포츠를 바라보는 문화가 변해야 한다. 솔직히 스포츠클럽을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반인들 시각에서 스포츠는 그냥 노는 것이다. 삶의 연장선상에서 신체활동과 스포츠가 얼마나 중요한지 사회 구성원들이 인식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김경준씨는 "운동이 중요하지만 한편으론 대학 가서 해도 되지 않나 하는 마음도 드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본격 입시 전선에 뛰어들면 남들은 다 책상에 앉아 있는데 나 혼자 운동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개인이 극복하기는 어렵다. 스포츠도 긴 안목에서 백년대계가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지난달 제29차 회의에서 교육부의 요청을 반영해 초등학교 1~2학년 학생의 체육시간을 분리해 편성하기로 했다. '즐거운 생활'에 음악 미술과 묶였던 체육이 분리된다. 1989년 제5차 교육과정에서 체육이 즐거운 생활로 통합된 지 35년 만에 이뤄지는 개혁이다. 동시에 중학교 스포츠클럽 활동 시간도 102시간에서 136시간까지 늘리기로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진흥회, 국가대표지도자협의회 등 유관 단체들은 공식 입장을 발표하며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전문가들은 "유소년 시절 체육 활동을 자주 접하는 게 평생 스포츠를 대하는 자세를 결정한다. 만 3세부터 중학교 2학년 정도까지는 체육활동을 많이 하는 게 올바른 교육이다. 선진국에선 어릴 때 건강한 신체를 만드는 게 향후 공부나 진로 결정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조언했다.

나아가 학교 운동장과 중·고교 정규 체육수업을 최신 트렌드에 맞도록 탈바꿈시키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획일화된 연병장식 운동장은 21세기 학생들의 욕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안산 송호고는 최근 기존 운동장을 밀어버리고 풋살장, 테니스장, 생태공원을 품은 스포츠공원으로 변신시키는 공사를 시작했다. 황교선 송호고 교장은 "학생들이 찾아오는 운동장을 만들고 싶다. 일단 오게 만들어야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진단했다. 정윤교 교사는 경기도에서 시행한 '학생 선택 중심 체육 교육과정'을 모범 사례로 추천했다. 일본의 '1인1기'처럼 중학교 체육시간 내내 한 종목만 정해서 즐기는 것이다. 정 교사는 "3년 내내 탁구만 친 학생을 봤는데 정말 잘 치게 됐다"고 말했다. 풀어야 할 숙제는 적지 않다. 정 교사는 "전문 인력 부족이나 타 교과 선생님들과 업무 분장 등 해결할 일이 많다. 경기도에서도 크게 확대를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았던 방식"이라고 손꼽았다.

결국 인식 전환과 제도 개선, 시설 보완 삼박자의 조화가 요구된다. 사회적 합의가 요구되는 정책 변화나 전체적인 공감대 형성은 극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교육 일선에서 즉각적으로 추진 가능한 변화는 바로 시설이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장비를 갖추고 안전하며 즐겁게 운동할 수 있다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몰리기 마련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부터 디지털 기반 스마트 건강관리교실 구축을 장려하며 예산(교당 5000만원 이내)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수요 증가는 분위기 반전을 유도한다. 세계적인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T1)은 우리나라 전국에 널린 최고급 PC방 문화가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초 체육시설도 이만큼 확충된다면 다른 종목에서도 '페이커'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한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