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경기가 끝난지 1시간여가 지났지만, 사직구장을 환하게 밝힌 라이트는 꺼지지 않았다.
롯데 자이언츠는 10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전에서 1대9로 대패, 5연승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내외야 수비진이 범한 실책만 5개. 참담한 패배였다. 매회 쏟아지는 실책에도 수비진을 격려해가며 추가 실점 없이 잘 버티던 에이스 박세웅도 6회에는 끝내 무너졌다.
2사 후 3연속 볼넷을 허용했고, 박동원의 적시타 때 박승욱의 홈송구 실책, 이주찬의 주루방해가 겹치며 4실점이 추가됐다. 타자 박동원이 홈까지 밟았지만, 이 과정에서 수비 실책이나 야수 선택, 주루방해가 섞이면 장내홈런(인사이드파크 홈런)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공식 기록은 2루타 2실책이다.
전날 홈런을 치며 인생 최고의 날을 맛본 이주찬은 하루만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5월 9일은 이주찬이 동생 이주형(키움 히어로즈)과 함께 KBO리그 역대 5번째 '형제 같은날 홈런'으로 기록된 하루였다.
하지만 이날 이주찬이 범한 실책이 2개, 모두 박세웅에게 끼친 영향이 적지 않았다. 1회 LG 오스틴 딘에게 선제 투런포를 허용한 상황. 2회에도 1사 후 안타를 맞았지만, 구본혁의 도루를 유강남이 저지했다. 하지만 깔끔하게 이닝이 끝나야할 상황에서 이주찬의 실책이 나왔다. 다행히 후속 상황이 없었고, 박세웅은 이주찬을 격려해줬다.
롯데는 4회 박승욱, 5회 전준우, 그리고 문제의 박동원 적시타 상황에서 박승욱의 홈송구 실책과 이주찬의 주루방해가 이어졌다. 사실상 이날의 승부가 마무리된 시점이었다.
경기는 오후 9시 36분에 끝났다. 박동원의 방송 인터뷰, 취재진의 엔스 인터뷰까지 모두 끝난 밤 10시쯤에도 사직구장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주찬의 또다른 하루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이주찬은 포수 마스크를 쓰고 그라운드에서 수비 특훈을 받았다. 경기가 끝난 뒤 특별 타격 훈련은 자주 있지만, 방금 실전을 마친 선수가 수비 훈련을 하는 일은 보기 드물다.
김민호 수비코치와 유재신 외야수비코치가 한꺼번에 배트를 들고 나섰다. 이주찬에게 마스크를 씌운 건 혹시나 모를 부상 우려 때문. 다시 말하면 그만큼 펑고를 강하게, 두 사람이 번갈아 치겠다는 의미였다.
언뜻 보기에도 펑고의 세기가 심상치 않았다. 익숙치 않은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시야방해도 있는 상황. 좌우로 날아가는 강한 타구를 향해 연신 몸을 날렸다. 두 코치의 세세한 피드백까지 받는 치열한 훈련이었다.
처음엔 두 코치와 구장 운영요원들만 함께 했지만, 중반쯤부턴 김태형 감독도 그라운드로 나와 지켜봤다. 이주찬은 격하게 몸을 던져 나뒹군 뒤에도 다시 벌떡 일어나 코치들의 방망이를 바라보곤 했다.
40분 가까운 훈련이 끝나고 비로소 이주찬은 마스크를 벗고 큰 한숨을 쉬었다. 코치들은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격려했다. 롯데 관계자는 "오늘 많은 실책이 나왔기 때문에 두 코치가 특별 수비 훈련을 제안했고, 이주찬도 기꺼이 응했다. 포수 마스크는 강습타구 훈련을 하다보니 혹시 부상을 당할까봐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찬은 해운대 출신의 부산사나이다.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제2의 이정후'로 기대받는 동생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두 차례 도전한 신인 드래프트에서 모두 지명받지 못했고, 2021년 육성선수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입단 첫해를 마치고 현역으로 군복무를 택했고, 지난해 5월 제대 후 다시 팀에 복귀했다. 재능을 인정받아 정식 선수가 됐다.
타고난 감각이 있고, 어깨도 좋다. 시즌전부터 김태형 감독이 "지켜봐야할 선수. 내야에서 해줄 역할이 있는 선수"라고 수차례 언급할 만큼 기대를 받았다.
이학주를 대신해 내야 멀티요원으로 개막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고, 4월 7일 두산 베어스전에선 연장 10회말 데뷔 첫 끝내기 안타를 쳤다. 5월 9일 한화전 홈런은 데뷔 첫 홈런이었다.
이날의 훈련을 통해 이주찬이 한단계 올라설 수 있을까. 훗날 이주찬이 더 좋은 선수로 성장했을 때 회상할, 의미있는 터닝포인트가 되길 바라본다.
부산=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