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용 기자]처음엔 뭔가 했지만 마법같은 '신의 한 수'였다. KT 위즈 강백호의 포수 전업 이야기다.
KT 위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가 열린 3월31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 KT는 주말 원정 3연전 스윕패 위기에 놓였다. 한화의 7연승 잔치 제물이 될 판이었다.
1-13으로 밀리며 패색이 짙은 8회말, KT 이강철 감독은 강백호를 포수로 앉히는 깜짝 용병술을 보여줬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포수로 뛰었지만, 프로에 온 후 포수로 출전한 적이 거의 없었던 강백호. 부상 등 돌발 변수로 정말 나갈 선수가 없어 이 경기 이전까지 2차례 교체 출전이 전부였다.
너무 경기가 안풀려 답답했던 이 감독이 뭐라도 해보려는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강백호의 적응력을 확인한 이 감독은 그를 아예 선발 포수로 출전시키기에 이른다. ABS의 시대. 포수의 프레이밍이 의미가 없어졌다. 여기에 강백호가 상식을 깨는 볼배합으로 상대를 당황시키고, 강한 어깨로 도루 저지까지 하니 포수를 시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거의 지명타자로 출전하던 선수가 포수 포지션에 들어가주자, 선수 운용의 폭도 넓어졌다.
물론 고비도 있었다. 지난달 19일 롯데 자이언츠전 선발로 나왔는데, 잘 하다 경기 막판 포구 실수로 결정적 포일을 범하며 상대에 승리를 넘겨주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9번 잘 하다가 1번 치명적 실수를 저지르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포수 포지션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래도 이 감독은 강백호 포수 카드를 포기하지 않았다. 4월에만 선발 6번, 교체 2번 등 총 8차례 마스크를 썼다. 포수로 활약하며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강백호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 간 여러 부정적 이슈들에 움츠러들었던 강백호가 다시 웃으며 활기차게 야구 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자신도 팀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더 이상 애물단지가 아니라는 자신감에 야구 뿐 아니라 모든 생활에 활력이 붙은 케이스다. 스포츠가 신체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심리적인 안정감이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강백호가 살아나자 팀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3월 8경기 타율 2할6푼5리 1홈런 6타점에 그쳤던 강백호는 4월 거짓말 같은 반전 드라마를 썼다.
4월에만 9홈런 25타점을 몰아쳤다. 4일까지 홈런 11개로 공동 1위, 타점 35개로 단독 1위, 최다안타 52개로 공동 1위, 장타율 5할8푼5리로 4위 등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개막 후 꼴찌로 떨어지며 "또 슬로 스타터야"라고 비아냥을 듣던 KT도 4일까지 3연승으로 8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5위 LG 트윈스와 3.5경기 차이다. 중위권 추격이 충분히 가능하다.
일단 강백호 포수 실험은 잠잠해졌다. 마지막 포수 출전 경기는 지난달 26일 SSG 랜더스전이었다. 강백호 방망이가 너무 좋으니, 그 흐름을 깨고 싶지 않을 수 있다.
강백호의 깜짝 활약에 자극을 받았는지 베테랑 주전 포수 장성우가 최근 뜨거운 방망이를 과시하고 있다. 4번을 칠 정도다. 강백호 포수 출전은 장성우 휴식 개념도 있었는데, 장성우를 뺄 수가 없으니 강백호를 굳이 무리하게 포수로 출전시킬 필요가 없다.
어찌됐든 모험수로 평가받았던 이 감독의 선택은 일단 대성공 분위기다.
주요 선수 1명이 살아나면, 팀 분위기가 확 바뀔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이 감독 부임 후 매 시즌 '슬로 스타터'였던 KT. 지난 시즌은 6월까지 꼴찌를 하다 정규시즌을 2위로 마치는 기적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올해는 '마법사' 이 감독이 강백호를 통해 새로운 마법을 부리고 있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