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특급 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운도 어느 정도 따라줘야 한다. 하지만 정상의 위치에서 바닥권으로 추락하는 건 순식간이다. 불과 1년 만에 '유럽 최고수준 센터백'이 '수비 구멍'으로 전락해버렸다.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의 수비수 김민재(28)가 모처럼 선발 출전 기회를 얻었으나 최악의 경기력을 펼쳤다. 실수는 모두 상대 실점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형편없는 평점을 받았다.
김민재는 1일(한국시각) 독일 뮌헨의 푸스발 아레나 뮌헨에서 열린 스페인 라리가 레알 마드리드와의 2023~2024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 선발로 나왔다. 이는 김민재 커리어 첫 UCL 준결승 출전이다. 지난 시즌 이탈리아 세리에A 나폴리 소속으로 8강전에 나선게 전부였다.
이날 경기는 김민재의 시즌 막판 커리어에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번 시즌 뮌헨 이적 후 시즌 초중반까지는 주전 자리를 유지하며 좋은 평가를 받던 김민재는 지난 1~2월에 열린 카타르 아시안컵에 한국대표팀으로 차출돼 나갔다 온 이후 팀내 입지가 확 떨어졌다. '무너졌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였다. 에릭 다이어와 마티아스 데 리흐트에게 주전 자리를 완전히 뺏겼다.
선발 기회의 박탈은 급격한 자신감 저하로 이어졌고, 이는 교체 출전 때 기량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원인이 됐다. 악순환이었다. 김민재에 대한 토마스 투헬 감독의 신뢰는 더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최근 리그 2경기 연속 출전하며 자신감을 조금씩 끌어올리는 상황이었다. 마침 데 리흐트가 주말 프랑크푸르트전에서 무릎 부상을 당한 덕분에 김민재에게 또 기회가 왔다. 챔스리그 준결승 1차전에 다이어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센터백 라인을 구성했다.
김민재 역시도 이 경기에 걸린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경기 초반에 매우 적극적이고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라인을 끌어올리며 선제적으로 패스를 차단하는 모습이 2~3차례 나왔다. 공격 빌드업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따. 덕분에 뮌헨이 초반 경기 흐름을 주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수비는 안정이 우선이다. 김민재는 이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적극적으로 나섰다가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전반 24분에 김민재가 뒷 공간을 비워두고 라인을 올리자 레알의 비니시우스 주니어가 재빨리 그 공간으로 파고들며 뛰었다. 김민재가 따라가지 못했다. 이어 토니 크로스가 예리한 킬패스로 비니시우스에게 공을 전달했다. 한 순간에 페널티지역 안쪽에서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이 만들어진 것. 비니시우스는 깔끔하게 골을 넣었다. 명백한 김민재의 실책이었다.
이후 무난하게 전반을 마친 김민재는 후반에 또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2-1로 역전한 상황이라 김민재에게 더 큰 비판이 나올 수 있는 장면이다. 일단 또 비니시우스를 놓쳤다. 전반과 비슷한 장면이 후반 33분에 나왔다. 김민재가 따라갔지만 마무리 슈팅까지 나왔다. 노이어 키퍼의 선방이 나왔다.
그러나 한번 흔들린 김민재는 회복되지 못했다. 다이어와의 호흡도 여전히 좋지 못했다. 후반 38분에 박스 안에서 수비 경합 도중 호드리구의 발을 걸어 넘어트렸다. 곧바로 경고와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레알 선제골의 주인공 비니시우스가 키커로 나서 동점골을 터트렸다.
결과적으로 뮌헨의 2실점은 모두 김민재에게 비롯된 것이다. 김민재가 아니었다면 귀중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지만,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는 바람에 결승행 가능성도 낮아지게 됐다. 김민재가 졸지에 '역적'이 된 셈이다.
평가는 냉정했다. 축구 통계매체 후스코어드닷컴은 5.7점을 부여했다. 이는 팀내 최저일 뿐만 아니라 양팀 합산 최저 점수다. 이날의 'X맨'이자 구멍이 바로 김민재였다는 뜻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