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준비를 실패하면,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한국 축구가 약체 인도네시아에 패해 40년만에 올림픽 본선 티켓을 놓친 '도하 참사'는 미흡한 준비가 만든 예견된 실패라는 지적이 나온다.
황선홍호를 꺾고 기적처럼 2024년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파리올림픽 예선) 준결승에 오른 인도네시아가 신태용 감독 체제에서 4년간 꾸준히 '빌드업'을 한 팀이었다면, 한국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급조된 팀'에 가까웠다.
참사가 벌어지기 약 한 달 전에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
황선홍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은 지난달 29일 파리올림픽 본선 티켓이 걸린 U-23 아시안컵 최종명단 23명에 공격형 미드필더 배준호(스토크시티) 측면 공격수 양현준(셀틱) 센터백 김지수(브렌트포드) 등 동나이대 주요 유럽파를 포함했다.
대중은 낯익은 이름의 세 유럽파 차출에 큰 문제가 없다고 받아들였다. 실상은 달랐다. 각 소속구단과 협상을 매듭짓지 못한 상황에서 황선홍호 코치진의 희망이 반영된 리스트업이었다. '직접 부딪혀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냐'는 식의 전형적인 '한국식 마인드'가 빚어낸 촌극으로 볼 수 있다.
잘 알려진대로, 이번 U-23 아시안컵은 FIFA 공인 대회가 아니기 때문에 각 구단이 선수 차출에 협조할 의무가 없다.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에서 잔류 싸움 중인 스토크시티가 주전 플레이메이커인 배준호를 내어줄리 만무했다. 양현준도 꾸준히 조커로 출전하고 있다. 김지수의 경우, 아직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브렌트포드에 차출을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다.
올림픽팀은 3월 A매치 기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2024년 WAFF U-23 챔피언십에 세 선수를 발탁했다. WAFF U-23 챔피언십이 이번 U-23 아시안컵의 모의고사 성격을 띠었기 때문에 주력 자원을 모조리 발탁해 조직력을 키우고자 했다. 올림픽팀 사정을 잘 아는 한 축구계 관계자는 "유럽 구단과 꾸준한 소통 없이 아시안컵에 차출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차라리 '3월 WAFF 대회에 소집을 안 하고 아시안컵 때 차출하겠다'고 전략적으로 사전 협상을 했어야 한다. 이건 코치진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한축구협회 측과 교감을 했기 때문에 이같은 선택을 내렸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배준호 양현준 김지수는 좋은 능력을 지닌 선수들인 건 부인할 수 없지만, 애초에 황선홍호의 플랜A가 아니었다. 올림픽 예선과 2023년 항저우아시안게임 등 최근에 열린 황선홍호에서 주력으로 활약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명재용 수석코치는 인도네시아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해 탈락한 뒤 "유럽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없어서 어려움이 있었다. 여러 루트로 유럽파 합류를 약속받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차출을 못해 힘들었다"고 패인 중 하나로 유럽파의 부재를 뽑았다.
이번 대회에 결장한 유럽파 트리오가 A대표팀을 빗댔을 때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급이면 명 코치의 말이 설득력이 있지만, 세 선수가 코치진의 기대대로 합류했다고 한들, 확 달라진 경기력으로 인도네시아를 압도했을지는 미지수다. 꾸준히 경기에 출전한 선수는 배준호 한 명뿐이다.
더 큰 문제는 황 감독의 '플랜'이었다. 인도네시아전에서 선발 출전한 선수 중 홍시후(인천) 김동진(포항) 등 두 명은 계획에 없던 대체발탁 선수들이었다. 애초에 23명 최종명단에 포함되지 못한 선수들이 주력으로 활용됐다. 조별리그에선 체력 안배 등의 이유로 로테이션을 가동할 수 있지만, 패하면 탈락하는 단판 토너먼트부턴 '플랜A'가 반드시 가동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포백을 활용하다 몸에 맞지 않은 스리백을 왜 가동했는지도 의문이다. 한국은 수비 조직력에 문제를 보이며 전반에만 2골을 헌납했다. 대회 도중 주전 골키퍼가 바뀌고, 전술도 바뀌었다. 유럽파 합류 여부와는 별개로 급조된 팀의 느낌이 강했다. 이러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좋은 경기력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반면 신태용 감독은 '지난 4년간 동고동락한 선수' 위주로 스쿼드를 꾸려 대이변을 일으켰다. 신 감독은 "이들을 잘 파악하고 있어서 동기부여만 잘 되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선수들에게 '결승에 갈 수 있으니 믿고 따라오라'고 말했다.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계속 심어줬던 게 4강 진출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황선홍호는 27일 오전 11시40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할 예정이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