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성원 기자]인도네시아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134위, 대한민국은 23위다.
기세도 달랐다. 한국 축구는 세계 최초로 10회 연속 올림픽 출전을 노렸다. 반면 인도네시아가 8강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U-23(23세 이하) 대표팀간의 역대 전적에서도 5전 전승으로 대한민국이 절대 우세했다.
조별리그 최종전 한-일전의 활기도 있었다. 황선홍호는 일본을 상대로 로테이션 감행하는 모험에도 1대0으로 승리를 챙겼다. 인도네시는 한 수 아래라 정상적인 경기를 하면 적수는 아닐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황선홍 감독은 변칙 카드를 꺼내들었다. 3-4-3 시스템이었다. 2경기 3골을 기록 중인 이영준(김천)과 '해외파' 정상빈(미네소타) 모두 벤치에 앉혔다.
대신 엄지성(광주) 강성진(서울) 홍시후(인천) 스리톱을 꺼냈다. 허리진에는 이태석 백상훈(이상 서울) 김동진(포항) 황재원(대구)이 포진했다. 스리백은 경고 누적에서 돌아온 변준수(광주)를 중심으로 이강희(경남) 조현택(김천)이 구성했다. 백종범(서울)이 골문을 지켰다.
내려서는 전술이 독이 됐다. 인도네시아의 거친 공세에 내몰렸고, 전반은 1-2로 끝이 났다. 점유율 48대52, 슈팅수 1대6, 유효슈팅수 0대3 모든 면에서 열세였다.
황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변화를 줬다. 이태석 홍시후 김동진을 빼고 이영준 정상빈 강상윤(수원FC)을 투입했다. 전형도 4-4-2로 바꿨다.
하지만 기세가 오르는 순간, 또 다른 악재가 찾아왔다. 이영준이 후반 25분 레드카드를 받았다. 상대 선수의 발목을 밟은 그는 처음에는 경고를 받았지만 VAR(비디오판독) 결과, 레드카드로 바뀌었다.
10명이 싸우는 수적 열세의 아픔은 컸다. 정상빈이 후반 39분 동점골을 터트리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지만 이어진 연장 혈투에서도 역전에 성공하지 못했다. 후반 추가시간에는 황 감독도 벤치에서 떠났다.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레드카드를 받았다.
'신의 룰렛게임'인 승부차기는 모아니면 도다. '승리의 여신'은 대한민국이 아닌 인도네시아를 향해 미소지었다. 인도네시아가 11-10으로 승리하며 사상 첫 4강에 올랐다.
이번 대회에선 1~3위가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 티켓을 거머쥔다. 4위는 아프리카 기니와 플레이오프를 펼친다. 8강에서 멈추는 순간 올림픽 티켓도 허공으로 날아갔다.
한국 축구의 첫 올림픽 진출은 1948년 런던 대회였다. 1952년 헬싱키 대회는 재정문제로 불참했다. 지역예선이 처음으로 도입된 1956년 멜버른 대회와 1960년 로마 대회는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탈락했다.
또 다시 본선 진출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64년 도쿄 대회였다. 그리고 긴 어둠이었다. 한국은 1968년 멕시코 대회부터 1984년 LA 대회까지 5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부진의 터널에서 가까스로 헤어나온 것은 1988년 서울 대회부터다.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세계 기록' 보유국이다. 가장 찬란했던 대회는 2012년 런던올림픽이다.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걸며 포효했다.
그러나 파리올림픽에서 축구를 못 본다.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서 불이 꺼졌다. 한국 축구가 올림픽 무대에 오르지 못한 것은 1984년 LA 대회 이후 40년 만이다. 인도네시아 벽에 막힌 '도하 참사'였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는 레드카드를 받은 황 감독 대신 명재용 수석코치가 참석했다. 그는 "퇴장 악재 속에도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잘해서 동점골까지 따라간 것에 의의를 둔다"며 "승부차기에 돌입한 뒤 하늘에 맡겼지만, 행운이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영준을 후반에 투입한 이유에 대해선 "부상자와 컨디션이 떨어진 선수가 많아서 연장까지 생각했다. 이영준이 선발로 나서면 120분을 다 뛰지 못할 것 같아서 후반전에 투입했다. 길게 보고 결과를 얻으려 했는데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고 돌아봤다.
그리고 "유럽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합류하지 못해 어려움이 있던 건 맞다"라며 "대회 참가 전에 여러 루트로 차출을 약속받았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차출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변명'에 불과하다. U-23 아시안컵은 FIFA 의무 차출 대회가 아니다. 유럽파 소집은 합류할 때까지 확신해선 안된다. 이에 대비한 플랜B와 C를 준비했어야 했다.
양현준(셀틱)과 김지수(브렌트포드)에 이어 배준호(스토크시티)의 차출이 무산됐지만 위기책은 보이지 않았다. 대응 능력도 떨어졌다. 수비 자원도 부족했다. 중국과의 2차전에선 서명관(부천)이 햄스트링(허벅지 뒷근육)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반면, 인도네시아 축구에 신화를 연출한 신태용 감독은 "일단 너무 기쁘고 행복하고 기분이 좋다"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착잡하고 힘들다"고 말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