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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처 살해 혐의 세기의 재판' OJ 심슨 암 투병 끝 사망(종합2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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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축구 스타로 최고인기 후 영화배우 등 활동…살인 혐의로 추락
美사회에 인종 문제 등 첨예한 논란 일으켜…민사재판에선 혐의 인정
'살인자의 고백' 책도 내…60대엔 강도죄 등으로 9년 복역 후 가석방

(워싱턴·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강병철 임미나 특파원 = 아내 살해 혐의로 기소됐다가 재판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전 미국 미식축구 선수 O.J. 심슨이 사망했다. 향년 76세.
프로풋볼 명예의전당 회장 짐 포터는 11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에서 심슨이 전날 암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포터 회장은 심슨의 전립선암 진단이 약 두 달 전에 공개됐으며, 그가 이후 항암 치료를 받아왔다고 덧붙였다.
심슨의 가족들도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그가 암 투병 끝에 숨졌다면서 "(사망 당시)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고 전했다.
심슨은 1994년 전처 니콜 브라운과 그의 연인 론 골드먼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오랜 재판 끝에 형사상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사건 자체는 미제로 남아 있다.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 이 재판은 미국의 엄격한 증거주의 판단 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947년 샌프란시스코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심슨은 어린 시절 구루병에 걸려 5살 때까지 다리에 보조기기를 착용해야 했다. 하지만 운동 신경이 뛰어났고, 지역의 체육센터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미식축구 스타의 꿈을 키웠다.
1967년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 편입해 풋볼(미식축구) 스타로 큰 인기를 얻었으며 미국프로풋볼(NFL)에서 11시즌을 뛰면서 1973년 러닝백으로는 최초로 2천야드를 넘게 뛰는 등 여러 기록을 남겼다.
이런 공로로 1985년 프로풋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선수 생활 이후에는 스포츠 캐스터와 영화배우, 렌터카업체 허츠의 대변인·광고모델 등으로 활동하며 부와 명성을 쌓았다.
그가 출연한 영화·TV시리즈로는 '총알 탄 사나이'(The Naked Gun) 시리즈(1988∼1994) 등이 있다.
그는 친구들에게 "나는 흑인이 아니라 O.J.이다"라고 말하곤 했으며, 인종적인 편견과 차별을 딛고 성공한 흑인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1994년 6월 백인인 그의 전처와 그 연인이 LA에 있는 자택에서 잔인하게 흉기에 찔려 사망한 뒤 며칠 만에 경찰이 심슨을 살인 혐의로 체포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그의 운명은 바뀌었다.

앞서 그는 스무살 무렵인 1967년 고교 시절의 여자친구와 결혼해 세 자녀를 뒀으나, 서른 살 무렵에 베벌리힐스의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18세의 니콜 브라운을 만나 동거에 들어간 뒤 첫 번째 부인과 이혼했다.
이후 심슨과 브라운은 결혼해 두 자녀를 낳았으나, 두 사람의 관계는 불안정한 것으로 알려졌고 결혼 기간 가정폭력과 학대 신고가 빈번했다.
1992년 브라운이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서 두 사람은 별거에 들어갔고, 살인 사건은 2년여 뒤에 발생했다.
특히 사건 발생 5일 후 경찰이 체포에 나서자 심슨은 약 2시간 동안 친구가 운전하는 차량 뒷좌석에서 권총을 들고 자살을 위협하는 모습이 TV 방송으로 생중계되면서 스포츠 영웅이었던 그의 명예는 급추락했다.
결국 그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이 재판은 그가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라는 점과 함께 인종 문제와 가정폭력, 경찰의 위법 행위에 대한 논란을 촉발하며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배심원 선정부터 평결까지 11개월이 걸린 재판 끝에 심슨은 1995년 10월 무죄 평결을 받았다. 당시 배심원단은 흑인 9명, 백인 2명, 히스패닉 1명으로 구성됐다.
미국에서는 무죄 평결이 내려진 사건에 대해서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항소가 허용되지 않아 재판은 이것으로 종결됐다.
재판 과정에서 사건 현장에 있던 장갑 등 여러 증거가 제출돼 유죄 혐의가 짙었으나, 심슨 측은 인종차별주의에 사로잡힌 경찰이 심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증거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증거로 제출된 장갑을 법정에서 착용해 보라고 심슨에게 요청했고, 심슨은 장갑을 손에 낀 뒤 "너무 작다"고 말했다. 그의 변호사는 "장갑이 맞지 않으면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LA에서는 1992년 백인 경찰관들이 과속운전으로 적발된 흑인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한 사건으로 'LA폭동 사태'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종차별 문제가 특히 예민한 이슈로 다뤄지던 때였다.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심슨의 재판은 방송으로 중계됐고 이 과정에 많은 미국인들은 심슨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봤으나, 흑인들 상당수는 심슨이 무죄라는 상반된 시각을 보여 미국 내 인종 갈등의 단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시 CNN과 타임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백인의 62%는 심슨이 유죄라고 믿은 반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66%는 심슨이 무죄라고 답했다.
이 형사재판 후 골드먼의 유족이 제기한 별도의 민사재판에서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이 사건에 대한 심슨의 책임을 인정하고 브라운과 골드먼의 유족에게 3천350만달러(약 459억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심슨의 일부 재산이 압류돼 경매에 넘어갔지만, 심슨은 배상금의 상당 부분을 지불하지 않았다.

심슨은 이후에도 공식적으로 자신의 결백을 계속 주장했으나, 2007년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가정 하에 살인 사건을 자세히 설명하는 '만일 내가 그랬다면: 살인자의 고백'(If I Did It: Confessions of The Killer)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그는 이 책의 부록 인터뷰에서 "내가 칼을 집었던 것은 기억한다. 그 부분은 기억한다. 솔직히 말해서 그 이후에는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법원 판사는 이 책의 판권을 골드먼의 가족에게 부여해 심슨이 지급하지 않은 민사 배상금 대신 책 판매 수익금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이후 그는 60세이던 지난 2007년 9월 라스베이거스의 호텔·카지노에 들어가 동료 5명과 함께 스포츠 기념품 중개상 2명을 총으로 위협하고 기념품을 빼앗은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이듬해 무장강도죄 등으로 최대 3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9년간 복역하다 2017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출소한 뒤에는 라스베이거스에 정착해 지냈으며, 2019년에는 트위터(현재 엑스) 계정을 만들고 여기에 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글과 사진, 동영상 등을 자주 올렸다. 이 계정 팔로워는 87만여 명에 달한다.
심슨이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세 자녀 중 한 명은 어릴 때 수영장에서 익사했고, 브라운과의 결혼에서 낳은 자녀들까지 총 4명의 자녀가 남아있다.
심슨은 살인 사건 발생 이후 25년이 되는 해에 AP통신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인생 최악의 날로 돌아가 되새길 필요가 없다"면서 "나와 내 가족은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 금지 구역'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긍정적인 면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solec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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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