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무용단 신작 '사자의 서'…주역 맡은 조용진·최호종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감정 표현…관객 상상하게 하는 춤"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죽음을 마주한 망자, 생을 돌아보는 망자, 저승으로 떠나는 망자.
오는 25∼2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무용단의 신작 '사자의 서'는 죽음 후 망자가 겪는 49일의 여정을 보여준다. 인간이 죽은 뒤 사후세계에서 헤매지 않고 좋은 길로 갈 수 있게 이끌어주는 지침서인 불교 경전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국립무용단을 대표하는 간판 무용수 조용진(39)과 무대 장악력이 뛰어난 최호종(30)이 각기 다른 망자 역을 맡았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작품에서 조용진은 1장과 3장에 등장해 죽음을 마주하고 저승으로 떠나는 망자, 최호종은 2장에 나오는 생을 돌아보는 망자를 연기한다.
지난 11일 국립극장에서 만난 조용진과 최호종은 죽음과 삶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의 작품을 준비하며 매주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있다고 했다. 주제 자체가 추상적인 만큼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 공을 들이는 듯했다.
조용진은 "작품을 처음 접하고 무용수 입장의 걱정보다는 관객 입장에서 극을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고 입을 뗐다.
최호종은 "그동안은 한국 설화 같은 고전 이야기를 각색해 친숙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이번 작품은 이야기나 인물을 창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이 표현하는 망자는 연장선에 있지만, 각기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먼저 조용진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길에 있는 망자의 독무를 7분간 소화한다. 그가 춤을 추는 동안에 다른 무용수들은 땅을 치며 살아있는 자들의 통곡 소리로 웅장함을 만들어낸다.
조용진은 "죽음을 마주한 망자의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등의 감정을 표현한다"며 "분노라고 해서 막 거칠게 감정을 표출하는 게 아니라 춤 안에서 감정이 보일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 자체로 감정이 표현됐으면 한다"며 "뒷모습에서도 '아우라'가 느껴지는 '혼'이 깃든 춤을 보여주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최호종은 소년의 천진난만함부터 사랑, 이별, 결혼 등 망자가 살면서 겪은 경험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낸다.
최호종은 "어렸을 때는 좀 느리게 가다가 나이가 들면서 덧없이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을 질감있게 표현하고 싶다"며 "어떤 이야기를 확실하게 전달하기보다는 모호하게 표현해 보는 사람들이 일상의 순간과 그때의 감정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나온 삶에 대한 회상 장면이지만, 자신이 망자임을 의식하고 있는 판타지 같은 제스처들도 나온다"고 귀띔했다.
두 사람은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돌아봤다고 했다.
최근 장례식장에 다녀오면서 삶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는 조용진은 "죽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면 조금 더 삶을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전했다.
평상시에도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는 최호종은 "예전에는 죽음을 모호하게 바라봤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되돌아보고 여유를 가지면서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했다.
9살 차이인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상대방의 배역이 욕심나지는 않았냐는 질문에는 자신들의 나이와 경력에 맞는 캐스팅 같다고 웃었다. 조용진은 2011년, 최호종은 2017년 국립무용단에 입단했다.
최호종은 선배 조용진에 대해 또래 남자 무용수들이 동경하는 대상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춤출 때뿐만 아니라 '차에서 내릴 때도 각도를 계산하나' 싶을 정도로 일상생활에서도 '멋'이 있다"며 "굉장히 섬세해야만 미학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지점이 있는데 그걸 아주 자연스럽게 잘 컨트롤한다"고 치켜세웠다.
조용진 역시 후배 최호종을 두고 "축구선수의 능력치를 공격, 수비, 민첩성 등 각 지표에 따라 육각형으로 표현하듯이 무용수로서 각 능력이 육각형을 꽉 채우는 '완성형'"이라며 "특히 몸이 아파도 될 때까지 하는, 춤에 대한 집요함을 보면 같은 무용수로서 자극받는다"고 칭찬했다.
춤출 때가 마냥 행복하다는 두 사람에게도 춤 인생의 전환점은 있었다. 조용진은 3년 전 왼쪽 무릎 연골이 모두 마모돼 받았던 무릎 수술, 최호종은 남들보다 늦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무용을 전공하면서 시달렸던 열등감에서 벗어난 순간을 전환점으로 꼽았다.
수술 이후 신체적인 제약 속에서도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 조용진은 "수술 이후로 오히려 초심을 잃지 않고 춤을 추려고 한다"며 "어떤 무용수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무용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고 말했다.
연극 연기를 배우다 연출의 권유로 무용으로 전공을 틀게 됐다는 최호종은 "또래보다 기본기가 워낙 떨어지니 열등감이 극에 달했다"며 "대학교 때는 제가 안무 순서를 외운 것만으로도 대견하다고 A를 주실 만큼 다른 친구들과 기준 자체가 다를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러다 어느 날 '나 행복하고 싶어서 춤추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어 연습실에서 6시간 동안 쉬지 않고 탈진할 것처럼 춤을 췄는데 그때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며 "이후 즐기면서 춤을 췄고, 그때쯤 동아무용콩쿠르에서 우승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기능적인 향상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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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