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X망신 당하지 말자."
남자프로농구 부산 KCC는 이번 6강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업그레이드된 별명을 얻었다. '공포의 슈퍼구단.' 정규리그 때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슈퍼팀'의 위용을 회복한 것도 모자라 공포스러울 정도로 상대 서울 SK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기록에서도 잘 나타났다. 1차전 81대63, 2차전 99대72, 3차전 97대77로 3연승 평균 21.7점차 승리는 역대 PO 최다 평균 점수차였다. 3점슛 평균 11.7개, 성공률 42.7%는 정규리그에서 각 1위였던 고양 소노(평균 10.9개), 원주 DB(성공률 37.5%)를 훨씬 뛰어넘은 기록이다. 특히 3점 성공률 40%대는 농구판에서 경이적인 기록에 해당한다. 또 지난 2차전 4쿼터(32-8)에서 '역대 PO 한 쿼터 최다점수차(24점)' 신기록을 세웠고, 3차전 2쿼터 40득점은 '역대 PO 한 쿼터 최다득점' 기록이다. KCC는 가볍게 6강 플레이오프를 통과했다.
이처럼 KCC의 돌변은 요즘 농구계 최고의 화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정규리그를 마감한 뒤 6강 1차전(4일)을 치르기까지 준비기간이 이틀 밖에 안 됐기에 더욱 놀랍다.
KCC 내부자들도 의아했단다. 구단 관계자는 "'훈련 하는 선수들 눈빛부터 완전히 달랐다. 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는 현장 스태프의 보고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고, 전창진 감독도 "이틀 준비하는 동안 나도 놀랄 정도로 선수들의 '수업태도'가 진지했고, 분위기도 올 시즌 최고였다"고 했다.
주장 정창영의 증언을 통해 팀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숨은 비결을 알 수 있었다. 전 감독은 6강 대비 훈련 개시에 앞서 선수단과 미팅을 했다. 미팅에서 전 감독이 당부한 내용의 요지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됐다. '이타심'과 '책임감'.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훈련을 시작할 때 감독이나 코치가 '훈시'를 한다. 이날 전 감독의 미팅 발언도 '으레 듣는 잔소리'라 여기고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릴 법했지만 선수단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전 감독이 자리를 뜬 뒤 주장 정창영은 선수들만의 미팅을 이어갔다. 정창영은 "감독님이 하신 얘기는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그냥 듣고 넘어갈 게 아니라 덧붙여서 선수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었다"고 소집 이유를 밝힌 뒤 "정규리그때 부상자가 들락날락하는 바람에 완전체 멤버에서 호흡을 맞출 시간이 없었지만 뒤늦게 짧은 시간이나마 다 모였으니 진지하게 소통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정창영이 당부한 이야기는 감독의 '훈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더 간절했다. "우리 한마음으로 우승을 바라봐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진짜 우리 개인기록, 욕심 그런 거 다 버리고 5명이 다 같이 하는 농구를 해보자".
정창영은 "나와 허웅 라건아 이승현은 작년에 3연패를 당했고, 최준용은 없던 힘도 쏟아붓는 친정팀을 상대한다. 공교롭게도 'SK를 제대로 꺾어보자'고 독을 품은 선수들이 모였다"며 당시 진지했던 분위기를 전했다.
무엇보다 선수들의 투쟁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한 마디가 있었다. 정창영은 "우리 이번에 X망신은 당하지 말자"고 했단다. "우리는 호화 멤버 특성상 승리하면 허웅 최준용 송교창 등 스타들에게 공이 돌아가지만, 패할 경우 그 이상의 비난이 쏟아진다. 좋은 선수들 모아놓고 망신을 자초하지 말자는 의미였다"는 게 정창영의 설명이다. 6강 시리즈에서 만점 식스맨 활약으로 전 감독의 칭찬을 받었던 정창영은 "마음가짐이 달라지니 경기 내용도 달라지더라. 감독님이 당부한 대로 혼연일체 희생해 준 선수들이 고마울 따름"이라며 웃었다. KCC의 4강 플레이오프 상대는 정규리그 챔피언 원주 DB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