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한동훈 기자] 박태하 포항 스틸러스 감독(56)은 경기를 앞두고 "광주도 약점은 있다"고 말했다. 경기는 포항의 승리로 끝났다. 사실 이변에 가까운 결과다. 이정효 광주 감독(49)은 최근 K리그에서 가장 인기 높은 지도자로 꼽힌다. 실력은 물론 개성있는 입담까지 겸비했다. 팬들이 즐거워할 요소를 두루 갖췄다. 광주는 이른바 '정효볼'로 돌풍을 일으켰다. 이정효 감독은 부임 첫 해였던 2022년 광주를 K리그2에서 K리그1로 승격시켰다. 2023시즌에는 예상을 뒤엎고 3위를 차지하는 돌풍을 낳았다. 올 시즌 출발도 산뜻했다. 개막 2연승을 질주했다. 주전 미드필더 정호연은 A대표팀에 발탁됐다. 이정효 체제 3년차로 접어든 광주는 서울과 강원을 완파하며 '정효볼'이 한층 무르익었음을 과시했다. 광주는 두 경기에서 여섯 골을 퍼붓고 스틸야드에 개선장군처럼 입성했다. 아직 준비가 부족해 보였던 포항은 광주의 3연승 제물로 안성맞춤이었다.
포항은 지난 3개월 동안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뀌었다. 박태하 감독이 작년 12월 취임했다. 주전 대부분이 좋은 대우를 받고 다른 팀으로 떠났다. 2023시즌과 이번 시즌 개막전 베스트11을 비교하면 골키퍼 황인재와 중앙수비수 박찬용만 그대로다. 아무리 포항이 전통의 명문이라지만 새 감독이 새로운 선수들과 한 차례 동계훈련으로 완성된 팀을 만들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포항은 17일 안방 스틸야드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4' 3라운드서 광주를 1대0으로 제압했다. 전술적으로 포항이 완승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주는 유효슈팅 단 2개에 그쳤다. 광주 특유의 패스워크와 공간 활용 능력이 전혀 발휘되지 않았다. 오히려 경기 막판 수비 집중력이 흐트러지며 포항의 단순한 노림수에 당했다. 경기가 끝난 뒤 이정효 감독은 "질 만한 경기를 해서 졌다"고 말했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박태하 감독은 비책을 완전히 공개하지는 않으면서도 '공간'이라고 힌트를 줬다. 그는 "광주는 굉장히 까다로운 팀이다. 축구는 공간 싸움이다. 광주의 공간을 분명히 발생시킬 수 있다고 봤다. 어떻게 끌어들이고 넓히느냐 그런 식으로 접근했다"고 밝혔다. 결승골의 주인공 정재희는 "광주에 맞춰서 수비를 콤팩트하게 준비했다. 안 쪽을 막으면서 별다른 공격을 하지 못하게 했던 점이 주효했다"고 귀띔했다.
이정효 감독은 포항이 강한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포항이 내려섰을 때도 어떻게 할지 나름 대비를 했다"고 했다. 하지만 포항은 라인을 적극적으로 올리지도 않고 완전히 내려앉지도 않았다. 포항은 극초반 거센 압박을 펼치는 듯하다가 살짝 물러섰다. 중원에서 진흙탕 싸움을 유도했다. 광주 공격을 주도하는 정호연을 원천 봉쇄했다. 조커 가브리엘은 포항 베테랑 완델손의 노련미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후반 추가시간에는 박태하 감독의 마지막 한 수까지 적중했다. 교체 투입한 이호재와 정재희가 골을 합작해 용병술마저 들어맞았다. 박태하 감독은 "준비한 훈련이 결과로 나타나 기쁘다. 선수들이 정말 수고했다. 선수들이 짧은 기간 동안 고민하고 소통하는 과정들을 잘 이해해서 감독으로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한동훈 기자 dh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