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지난 10일 서울-인천전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밖 '린가드 존' 앞에서 길게 줄을 선 팬들의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는 외국인이 있었다. 그는 미국 매체 '디 애슬레틱'의 스튜어트 제임스 기자.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라는 제임스 기자의 눈에는 특정 선수의 유니폼을 구매하고 마킹을 하는 부스가 따로 마련되어 있고, 제시 린가드(서울)의 이름과 등번호 10번이 박힌 유니폼을 구매하기 위해 2시간 넘게 줄을 선 팬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는 오후 4시에 시작된 K리그1 2라운드 경기를 앞두고 개인 SNS에 '린가드 존' 영상을 올려 현지 팬들에게 이같은 소식을 재빠르게 전달했다. 영국 매체 더선, 데일리메일 등은 제임스 기자의 SNS 게시글을 토대로 '린가드 존'과 린가드 효과로 인해 K리그 관중 신기록이 작성됐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이날 경기장에는 2013년 스플릿라운드 도입 후 최다인 5만1670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경기 전 기자와 따로 만난 제임스 기자는 "내가 이곳에 온 이유 중 하나는 린가드다. 린가드의 K리그 입성은 잉글랜드 현지에서도 대단히 놀라운 소식이다. 맨유 소속으로 FA컵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고,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A매치 32경기를 뛴 '성공한 선수'가 왜 한국에 왔고, 어떤 활약을 펼칠지 궁금했다. 린가드가 뛰는 경기를 보고, 린가드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한번 나눠보고 싶다"고 말했다. 린가드의 한국행에 개인적으로도 놀랐다는 제임스 기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웨스트햄에서 매우 좋은 모습을 보였고, 다시 웨스트햄으로 갈 줄 알았다. 웨스트햄 대신 노팅엄 포레스트로 이적한 이후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여러 팀들이 원했던 선수가 어느 순간 원하지 않는 선수가 되어버렸다. 그 후 튀르키예, 미국,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국에서 한국으로 온 선수가 7명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간 한국으로 가는 케이스가 많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린가드는 K리그 41년 역사를 통틀어 네임밸류가 가장 높은 외인 선수로 꼽힌다.
린가드는 제임스 기자가 기자석에서 지켜본 경기에서 전반 30분 조커로 들어가 약 60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전반 강상우를 향한 침투 패스로 관중석의 탄성을 자아내는가 하면, 후반 막판 허공으로 날린 슛을 쐈다. 지난해 4월 노팅엄 소속으로 마지막 공식전을 치른 린가드는 약 11개월간의 공백 끝에 지난 2일 광주전을 통해 그라운드 복귀전을 치렀다. 김기동 서울 감독에 따르면 린가드는 아직 몸상태가 정상 컨디션의 60~70% 밖에 되지 않는다.
제임스 기자는 비단 린가드 한 명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스완지시티 서포터라고 고백한 제임스 기자는 "기성용을 보고 싶었다. 기성용은 35세가 된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 스완지, 셀틱에서 존경받던 선수였다. 두번째로는 K리그의 축구 수준을 보고 싶다. 수준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들릴 지 모르지만, K리그가 어떤 축구를 하는지 알고 싶었다. 잉글랜드 2부 혹은 3부와 비교해보고 싶다. 내가 들은 바로는 K리그가 조금 수비 라인을 내려서 콤팩트한 축구를 펼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 그런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5년간 가디언, 디애슬레틱 등의 소속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월드컵, 유로 등 굵직한 대회를 취재해온 제임스 기자에게 평소 한국 축구에 대한 이미지를 묻자, 돌아온 대답은 '박지성'이었다. 그는 "박지성과 같이 뛴 선수들 얘기를 들어보면, 늘 긍정적인 말만 나온다. 알렉스 퍼거슨경이 박지성을 '팀 플레이어이고 팀에 헌신하는 선수'라고 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큰 경기에 자주 기용하기도 했다. 한국 축구를 생각할 때 박지성이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한국이 4강 탈락한 지난 카타르아시안컵에 대해선 "솔직히 한국이 우승할 줄 알았다. 손흥민은 스타 플레이어지만, 인격적으로도 매우 좋은 사람이다. 늘 웃는다. 황희찬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에서도 많은 선수가 뛰고 있는 한국은 분명한 강팀이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이 팀 플레이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회 도중 그러한 갈등이 빚어질 줄은 몰랐다. 또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한국에서 인기가 없다는 것도 실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