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조상우는 가장 중요할 때…."
키움 히어로즈 홍원기 감독은 '비밀의 남자'다. 시즌 구상, 선수 보직 등에 대한 질문을 하면 속 시원하게 답변을 해주는 스타일이 아니다.
물론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다. 키움은 선수층이 두텁지 못하다. 당장 이번 비시즌 토종 선발 자원이 없다. 약 10명의 선수가 경쟁을 펼치는 중이다. 괜히 감독이 특정 선수 이름을 언급하면 선수들의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홍 감독은 미국-대만으로 이어진 스프링캠프 지휘를 마치고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홍 감독은 "캠프 전부터 선발진 구성에 대한 고민을 했는데, 캠프를 통해 후보들이 압축됐다. 어느정도 윤곽을 잡았다. 시범경기에서 길게 던지는 투수들이 최종 후보라고 보시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누가 앞서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을 아꼈다.
홍 감독은 필승조에 대한 얘기도 꺼냈다. 그는 "시범경기를 통해 7, 8, 9회를 책임질 선수들을 가려낼 것이다. 경기를 보시면 아실 것"이라며 웃었다.
이 말인 즉슨, 조상우도 마무리가 확정이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조상우는 군 복무를 마치고 모처럼 만에 스프링캠프에서 시즌 준비를 했다. 2020 시즌 33세이브를 기록하며 세이브 타이틀을 따냈다. 통산 82세이브를 따낸 국가대표 불펜이다. 몸만 정상이라면 조상우가 마무리를 맡지 않을 이유가 없다. 조상우는 이번 캠프를 앞두고 10kg 이상을 감량하며 홀쭉해져 나타나 더 큰 기대를 모았다. 홍 감독도 캠프 전에는 "구관이 명관"이라며 조상우 마무리쪽에 무게를 실었다.
그런데 홍 감독이 생각지 못한 얘기를 꺼냈다. "조상우 마무리도 확정된 게 아니냐"고 묻자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조상우 보직 정도는 말씀해주셔도 되는 것 아니냐"고 하자 "이제 선수들이 귀국장으로 나오고 있다. 선수들 인터뷰를 하셔야 하지 않겠느냐"며 말을 돌렸다.
이후 의미심장한 얘기를 했다. 홍 감독은 "우리팀 2022 시즌과 지난 시즌을 비교해보면 달랐던 게 있다. 2022 시즌에는 7, 8, 9회에 뒤집어진 경기가 별로 없었다. 반대로 작년에는 너무 많았다"고 하며 "그래서 우리는 지금 9회보다 8회를 더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 있다. 조상우는 가장 중요한 이닝에 나가지 않을까 싶다"고 알쏭달쏭한 답변으로 힌트만 줬다. 키움은 2022 시즌 돌풍을 일으키며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고, 지난 시즌은 꼴지로 시즌을 마감했다.
결국 7회나 8회 경기 흐름을 지켜야 할 때 가장 강력한 투수인 조상우를 쓰고, 9회 마무리는 다른 선수에게 맡길 수도 있다는 걸로 해석이 된다. 키움은 6월 상무 입대가 예정돼있지만, 그 전까지는 마무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김재웅이 있기는 하다.
이날 함께 귀국한 조상우는 보직에 관해 "그건 감독님이 결정하시는 문제고, 나는 열심히 던지기만 하면 된다"며 개의치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과연 홍 감독은 조상우 카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가장 잘 던지는 투수가 마무리'라는 기본 공식을 깨는, 획기적인 불펜 운용을 보여줄 것인지 궁금해진다.
인천공항=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