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며칠 전까진 따뜻한 남쪽나라였는데…"
대한민국 최남단의 제주도는 겨울에도 내륙에 비해 온화한 날씨 때문에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따뜻한 날씨와 많은 훈련시설 덕분에 축구와 야구팀들의 동계 전지훈련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아마추어 팀들 뿐만 아니라 프로팀도 제주로 몰려든다. 실제로 1월 초순부터 제주가 안방인 제주 유나이티드 뿐만 아니라 김천 상무와 K리그2 충남아산FC가 제주에서 전지훈련을 진행 중이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도 이런 일정을 감안해 '제1차 2024 K리그 동계 전지훈련 미디어캠프'를 22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마련해 전지훈련 중인 K리그 구단들의 소식을 전하려 했다.
하지만 관광객과 프로구단, 그리고 한국프로축구연맹 등 모든 이들이 하나 간과한 게 있었다. 갑작스러운 날씨의 변덕이다. 사실 이건 미리 예측하기도 어렵고,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해도 막상 닥치면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그래서 제1차 미디어캠프 기간에 수많은 해프닝이 벌어졌다.
▶김포→제주, 3시간 헤매다 결국 회항한 연맹 관계자
당초 1차 미디어캠프는 22일부터 23일까지 예정돼 있었다. 22일은 이동일. 연맹관계자와 전지훈련 취재를 신청한 미디어들이 이날 오후 제주공항에 집결해 서귀포 시내 숙소에 들어간 뒤 23일 아침부터 김천상무와 충남아산 2개 구단의 감독 및 선수 인터뷰 일정으로 짜여진 스케줄이다.
때문에 서울에서 출발하는 미디어와 연맹 관계자는 각자 편의에 맞게 항공권을 구매한 뒤 제주공항에서 만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이날 오후부터 제주도를 비롯한 남서부 지역에 강한 한파와 폭설이 시작되면서 순탄할 것으로 예상됐던 일정이 '악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앞선 시간대에 출발한 일부 미디어는 예정대로 제주공항에 도착했지만, 이보다 30~40분 뒷 시간대에 출발하려던 미디어 및 연맹 관계자의 항공편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 출발 지연을 거듭하던 한 항공사는 출발 전 결함이 발견돼 재정비 후 다시 이륙하려 했지만, 끝내 김포에서 뜨지 못했다. 차라리 이게 나은 경우였다.
연맹 관계자와 미디어가 탄 모 항공사의 비행기는 김포에서 이륙에 성공한 뒤 제주공항에 도착했지만, 강한 바람과 폭설에 따른 활주로의 문제로 계속 착륙에 실패했다. 비슷한 시간대 다른 항공사 비행기들도 마찬가지. 저녁 시간대 제주공항 상공에 5~6대의 비행기가 마냥 떠서 대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연맹 관계자가 탄 비행기는 2번이나 착륙에 실패하자 끝내 김포로 회항하는 결정을 내렸다. 탑승객들은 모두 패닉상태였다. 비행기 안에서만 거의 3시간을 허비한데다 거듭된 착륙 시도와 실패 과정에서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다고 한다.
▶눈밭에서 훈련, 공 대신 제설장비를 든 코치들
프로구단들이 전지훈련을 진행하던 제주도 서귀포시의 상황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22일 오후부터 칼바람과 눈발이 계속 이어졌다. 눈발이 가끔씩 잦아들 때면 환한 햇빛이 비쳤지만, 기온은 영하로 뚝 떨어졌다. 필연적으로 실외에서 진행해야 하는 축구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김천과 충남아산은 실내 웨이트 훈련시간을 늘리며 기상 상황을 주시했다. 그러다 잠시 날씨가 풀리는 듯 하면 재빨리 운동장으로 달려나갔다. 23일 오전 그라운드 훈련이 예정돼 있던 충남아산은 눈이 왔지만, 일단 출발을 강행했다. 다행히 그라운드 사정은 나쁘지 않았다. 아직 눈이 쌓이지 않았고 선수들이 도착했을 때는 눈발도 그나마 잦아들어 잠시동안이지만, 운동장 훈련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에 그라운드 훈련을 치르려던 김천 상무는 고생을 톡톡히 했다. 정정용 감독은 "오전 훈련은 날씨가 나빠 실내 웨이트장 훈련으로 바꿨는데, 오후마저 실내에만 있을 순 없었다. 코치들에게 '함께 눈을 치우더라도 일단 가보자'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각오를 다지고 나선 김천 코칭스태프 앞에는 '초록 그라운드'대신 '하얀 설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 사이 눈이 제법 쌓여 이대로는 훈련을 진행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 정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제설 장비를 잡았다. 치워도 치워도 줄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눈은 이미 낭만과는 거리가 먼 '하얀 쓰레기'였다.
▶제주에 고립된 사람들
제주 기상악화 여파는 계속 이어졌다. 23일 제주에서 출발 예정이던 항공편이 거의 전부 결항되는 사태가 벌어지며 뜻하지 않게 제주에 고립된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미디어캠프에 참여한 취재진과 이를 지원하기 위해 미리 도착해있던 스태프 등은 23일 김포 등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항공편 결항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이어 순식간에 24일과 25일 항공편이 동이 나 버렸다. 제주를 찾은 수많은 관광객들도 대체 항공편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과 일터로 복귀해야 하는 각자의 사정 때문에 때아닌 '예약대란'이 벌어졌다. 금액이나 시간대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제주를 떠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괜찮다며 항공사오 여행사로 문의전화가 쇄도했고, 홈페이지는 '광클'로 접속이 어려워졌다. 일부 사람들은 내륙으로 가는 여객선을 이용해서라도 가보겠다며 서둘러 항구로 떠나기도 했다. 이상한파와 폭설로 인해 제주는 순식간에 '전쟁터'처럼 바뀌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