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토너먼트의 성패는 수비가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격 쪽에 시선이 쏠려 있었지만, 달라진 클린스만호의 숨은 비밀은 수비였다. 반등의 시발점이 된 지난해 9월 웨일스전(0대0 무)부터 아시안컵 직전 펼쳐진 6일(이하 한국시각) 이라크전(1대0 승)까지 무려 7경기 연속으로 실점하지 않았다. 왼쪽에 자리한 이기제(수원 삼성)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지만, 이기제-김민재(바이에른 뮌헨)-정승현-설영우(이상 울산 HD)로 이어진 포백은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확실한 플랜A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월드클래스' 김민재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했다. 파울루 벤투 전 감독 시절 오른쪽 센터백으로 뛰었던 김민재는 왼쪽으로 자리를 옮겨 더욱 위력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수비가 약한 이기제를 적절하게 커버하는 것은 물론, 확실한 리딩과 특유의 파워 넘치는 수비로 대표팀 수비진을 이끌었다. 나폴리 시절부터 익숙한 왼쪽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빌드업 비중을 더욱 높였다. 김민재는 정확한 패스와 공격적인 움직임으로 역대 최강의 공격진을 뒷받침했다. 김민재를 중심으로 한 수비진은 64년만에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하는 한국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정작 본고사인 아시안컵을 앞두고 균열이 오기 시작했다. 무실점으로 마치기는 했지만 이라크전 수비력은 대단히 불안했다. 김민재의 확실한 파트너로 자리잡은 정승현이 흔들렸다. 정승현은 이날 자신의 쪽에서 두차례 1대1 찬스를 허용했다. 오히려 대표팀 주전에서 밀리는 듯 했던 김영권(울산 HD)의 경기력이 더 빛났다. 클린스만 감독은 그래도 정승현에 대한 믿음을 보였다. 바레인과의 1차전, 요르단과의 2차전 모두, 기존의 플랜A를 고수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무너졌다. 7경기에서 단 한골도 내주지 않았던 수비진은 두 경기에서 3골이나 내줬다. 물론 핵심 골키퍼 김승규(알 샤밥), 김진수(전북 현대)의 부상 등 변수도 있기는 했지만, 두 경기 모두 견고함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이기제는 이번 대회에서 '폭탄'이 된 모습이고, 정승현은 소극적이고, 불안한 플레이로 일관하고 있다. 수비는 대표팀의 불안요소로 전락했다.
사실 클린스만호가 무실점 경기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수비 전술이 특별하지는 않았다. 공격에서 그런 것처럼, 수비에서도 김민재의 개인 능력에 절대 의지했다. 아시안컵에서도 김민재는 빛나고 있다. 역습 위주로 나선 상대의 공격에 특유의 폭발적인 스피드와 한발 앞선 예측으로 맞서며, 완벽한 수비력을 선보이고 있다. 바레인과 요르단의 공격수들은 김민재 앞에서 작아졌다. 김민재는 이번 대회에서도 벽과 같은 모습이다.
문제는 김민재만 돋보인다는 점이다. 조직력이 생명인 수비 라인은 시종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김민재가 원맨 수비에 가까운 플레이로 균열을 메웠다. 김민재는 빠른 판단으로 상대의 예봉을 미리 꺾으며, 버팀목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김민재라도 그 넓은 수비 지역 전체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실제 김민재가 없는 쪽에서 계속 실점이 나왔다. 클린스만 감독은 풀백을 바꿔가며 변화를 줬지만, 그럴수록 수비진의 김민재 의존도는 더욱 올라갔다.
빌드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승현은 원래부터 빌드업에 능한 선수가 아니다보니, 후방 공격 작업이 거의 김민재에서 이루어졌다. 박용우(알 아인)에서 홍현석(헨트)로 중원이 바뀌다보니 김민재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김민재가 슈퍼맨은 아니다. 김영권의 투입 등으로 변화를 주는 것도 고려할만 하다. 수비의 중요성은 설명이 필요없다. 2경기에서 3골이나 내주는 수비로는 아시아 정상에 설 수 없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