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고재완 기자] 격세지감.
오래 지나지 않았으나 세상이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고 여겨지는 느낌이라는 의미다. 세상이 아주 많이 바뀌어서 다른 세대가 된 느낌이나 세대 사이에 사고방식이 매우 차이 난다고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이 사자성어처럼 우리나라 연예계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드물다. 그만큼 많이 변했다는 말이다.
1990년 종합편성 지상파 방송사는 KBS와 MBC 단 두 곳 뿐이었다. 1990년 가장 인기 있었던 작품은 KBS '서울 뚝배기'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와 MBC '몽실언니''우리들의 천국' 정도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삼은 드라마 '야망의 세월'도 1990년 전파를 탔다. 하지만 주된 드라마 장르는 가족극인 것을 알 수있다.
유행어도 드라마에서 많이 탄생했다. '서울 뚝배기'는 주현의 "지가요, ~했걸랑요", 김애경의 "실례합니다~"가 대유행했고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서 김상순의 대사 "얼어죽을"도 많이 회자됐다.
예능에서는 KBS '유머1번지'와 '쇼비디오자키'가 절대적인 명성을 떨쳤다. MBC에서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주병진과 노사연의 '배워봅시다' 코너가 화제를 모았고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도 이 당시 태동했다. 주병진은 "오늘도 여러분의 시선을 하나~ 둘~ 모아~모아서"라는 유행어를 탄생시켰고 김흥국은 "으아~들이대~, 아! 응애에요, 거의 나의 독무대에요"를 만들어냈다.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일본물보다 국산 애니메이션이 득세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KBS는 '영심이'와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 옛적에' '날아라 슈퍼보드' 등으로 기선을 제압했고 MBC는 '머털도사' 시리즈로 반격했다.
충무로는 방화라고 불리던 한국영화 흥행작이 많이 탄생한 한 해였다. 최근 리메이크작까지 등장한 '나의 사랑 나의 신부'와 최고의 흥행작이 된 '장군의 아들'이 1990년작이다. 청춘물인 '비오는 날의 수채화'와 '있잖아요 비밀이에요'도 인기를 모았다. '우묵배미의 사랑' '그들도우리처럼' '남부군' 등 사회성 짙은 작품들도 사랑받았다.
할리우드 작품의 인기는 여전했다.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 충격적인 마스크신으로 화제를 모았던 폴 버호벤 감독의 '토탈 리콜', 아직도 '밈'으로 많이 쓰이는 '미저리' 등 문제작 뿐만 아니라 '다이하드2' '로보캅2' '백투더퓨처3' 등 속편들도 속속 등장했다. '귀여운 여인'과 '사랑과 영혼' 등 로맨스 영화도 각광받았다.
홍콩영화들도 아직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천장지구'와 '도성' 그리고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이 이 때 개봉했다.
가요계는 르네상스라고 할 정도로 많은 특급스타들 그리고 인기곡들이 등장한 한 해였다. 우선 015B와 신승훈, 심신, 윤상, 강수지, 김민우, 윤종신, 현진영이 1990년 데뷔했다. 김민우는 '입영열차 안에서'로 데뷔하자마자 톱가수에 등극했고 민혜경은 '보고싶은 얼굴'로 인기를 얻었다. 김지연의 '찬바람이 불면', 나미의 '인디언 인형처럼', 박선주의 '소중한 너', 김완선의 '나만의 것',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 다시', 봄여름가을겨울의 '어떤이의 꿈', 송골매의 '모여라', 신해철의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이선희의 '한바탕 웃음으로', 이승철의 '마지막 콘서트' '소녀시대', 조정현의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 홍서범의 '김삿갓',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등 록 포크 댄스 발라드 등 장르를 불문하고 수많은 명곡들이 탄생한 시기다.
트로트가수들도 활발히 활동했다. 김지애는 '몰래한 사랑'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고 주현미의 '잠깐만', 현철의 '싫다 싫어' 등 요즘 트로트의 인기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팝에서는 머라이어 캐리가 '비전 오브 러브'로 레전드의 탄생을 알렸고 MC해머의 '유 캔 터치 디스'가 클럽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마돈나와 휘트니 휴스턴도 있었지만 뉴키즈온더블록이라는 전설의 팝 아이돌이 등장한 해이기도 했다. 뉴키즈온더블록은 지금도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의 삽입곡으로 쓰이는 '스텝 바이 스텝'을 내놨다.
2024년 K-컬쳐는 전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영향력은 단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1990년 수많은 히트곡과 콘텐츠, 스타들이 탄탄하게 기반을 쌓아놨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말한 백범 김구 선생은 탄탄하게 쌓아올린 K-컬처를 보면서 하늘에서 웃고 있을까.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