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카타르)=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그야말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셈'이 됐다.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이 강한 신뢰를 보이며 2023년 카타르아시안컵에 동행한 레프트백 이기제(33·수원)가 첫 경기부터 큰 실망을 남겼다. 15일 카타르 도하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바레인과 조별리그 E조 1차전에 선발출전한 이기제는 부진한 경기력과 1개의 경고만을 남기고 후반 7분만에 '초고속 교체아웃'되며 자신의 아시안컵 데뷔전을 씁쓸하게 끝마쳤다. 클린스만 감독은 경고 관리 차원에서 이기제를 교체했다고 말했지만, 이른 교체에는 불안한 경기력, 장점 실종, 전술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기제는 바레인의 오른쪽 공격수인 등번호 7번 알리 마단과 경합에서 내내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수비형 미드필더 박용우, 센터백 김민재가 전반 이른 시간 줄줄이 경고를 받으며 클린스만호 벤치에 불안감이 엄습한 전반 28분, 상대 진영에서 방향 전환하는 마단을 저지하고자 손으로 잡아채 경고를 받았다. 이로써 한국은 경기 시작 28분만에 무려 3명이 경고를 받는 예상지 못한 상황에 놓였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미 한 장의 경고를 안은 이기제는 불과 5분 뒤인 전반 33분 이번에도 마단에게 파울을 범했다. 이기제를 등진 상태에서 돌아뛰는 마단을 또 손으로 낚아챘다. 마단은 주심을 향해 손가락 두 개를 펼치며 추가 경고를 줘야한다고 어필했지만, 주심은 반칙만 선언했다. 한국이 황인범의 선제골로 1-0 앞선 후반 4분, 이기제는 역습에 나선 마단의 진로를 고의로 방해하는 파울을 또 범했다. 이때, 바레인 선수들은 우르르 마닝 주심쪽으로 몰려가 강하게 항의했다. 경고누적 퇴장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장면이었지만, 전반 초중반 쉽게 옐로카드를 빼들던 주심은 이번엔 경고를 내밀지 않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이기제는 약 3분 뒤 김태환과 교체됐다.
상대의 역습을 조기에 차단하는 것은 수비수가 해야 할 주된 임무다. 그런 점에서 이기제는 응당 해야 할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대처 방식이다. 지난시즌 소속팀에서 9월30일 이후 두 달 넘게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이기제는 경기 감각이 떨어져서인지 번번이 한발 늦게 대응했다. 이날 이기제의 지상 경합 성공률은 6번 시도, 1번 성공(약 16%)이었다. 파울은 양팀을 통틀어 가장 많은 4번이었다. 13분당 1번씩 반칙했다. 마단과 일대일 경쟁을 이겨내지 못한 이기제가 마음 편히 오버래핑에 나가 장기인 '부메랑 크로스'를 뿌릴리 만무했다. 이기제는 52분 동안 단 1번 크로스를 시도했고, 그마저도 실패했다.
이기제가 교체된 타이밍은 후반 6분 압둘라 알하샤시에게 동점골을 내준 직후다. 클린스만 감독은 이기제쪽에서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판단, 라이트백 김태환을 이기제와 교체하고, 라이트백으로 선발출전한 설영우를 왼쪽으로 돌렸다. 이후 한층 수비가 안정된 한국은 후반 11분과 23분 이강인의 '개인 전술'에 의한 연속 득점으로 3대1 승리했다.
일단 서전을 승리로 장식하며 한숨을 돌렸지만, 소위 '이기제 리스크'는 64년만에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하는 한국이 남은 대회 기간 풀어야 할 최대 숙제로 남았다. 당장 요르단과 2차전부터 김태환-설영우를 양 풀백에 놓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이들을 백업할 자원이 마땅치 않다. 경험이 풍부한 레프트백 김진수는 부상을 당해 조별리그 출전이 불투명하다. '이기제 리스크'에도 굳건한 믿음을 드러냈던 클린스만 감독이 요르단전에서도 '못 먹어도 고(GO)'를 외칠지, 변화를 줄지 궁금하다. 도하(카타르)=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