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고우석이 메이저리그 포스팅을 신청한다고 했을때, 현지 시장을 잘 알고 있는 야구계 전문가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냉소적이었다.
고우석도 막무가내로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1년전부터 에이전시와 상의해 메이저리그 도전 준비를 하고 있었고, 소속 에이전시도 '너에게 관심을 보이는 구단이 있다'는 분위기를 전하면서 '만에 하나'에 대비를 해왔다. 소속팀 LG 트윈스 역시 고우석이 포스팅 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파악은 하고 있었지만, 사실 이번 비시즌에 당장 신청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도 맞다. 고우석이 명확하게 '2023시즌이 끝난 후 포스팅을 하게 해달라'고 공식 요청을 한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신분 조회 요청 그리고 포스팅 신청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다만, 포스팅 성공 가능성을 두고는 전문가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외국인 선수 계약 시장을 세밀히 파악하고 있는 한 야구계 관계자는 "신분조회 요청이 들어왔다고 해서 그게 전부 계약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요즘은 해외 리그도 상세한 데이터를 통해 선수 분석을 할 수 있다. 그런 데이터를 가지고 '이런 선수가 있네?'하고 관심 정도만 보이면 신분 조회가 이뤄질 수 있다. 아직 고우석의 경우 메이저리그 시장에서의 인지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포스팅이 성사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고 이야기 했다. 또다른 관계자도 "이번에는 이름을 알리는 홍보 목적이 아닌가 싶다. 솔직히 고우석에 대한 관심이 높지도 않고, 무리한 도전인 것 같다"고 냉정한 시선을 보냈었다.
비슷한 시기에 포스팅을 도전한 이정후의 경우, 조금 달랐다. 2022시즌 개인 타이틀을 휩쓸며 리그 MVP에 등극했고, 일찌감치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스카우트를 계속해서 파견해 먼저 관심을 보내왔다. 메이저리그에 언젠가 가겠구나 하는 예상을 할 수 있었다. 이정후는 2022시즌이 끝난 후 구단에 먼저 공식적으로 요청을 했고, 히어로즈 구단도 공식적으로 허용을 하면서 1년전부터 서로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고우석의 포스팅 신청 배경을 두고 해석은 분분했지만 결국 그는 원하는 메이저리그 계약을 하는데 성공했다. 마지막까지 극적이었다. 막상 적극적으로 오퍼를 해오는 구단들이 없는 상황에서 막판 샌디에이고가 치고 나섰고, 마감 시한 하루 전날 급하게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메디컬 테스트 후 최종 계약이 성사됐다. 마감 시한 7분전 극적인 계약이었다.
고우석의 계약 조건은 2년 400만달러(약 52억원)를 보장받고, 2년 후 구단이 +1 옵션을 실행하면 300만달러를 더 받는 조건이다. 여기에 양측이 합의한 조건을 모두 채우면 240만달러도 더 받게 된다. 최대로는 2+1년 940만달러다.
다만 이 조건이 LG 구단이 처음 포스팅을 '조건부 승인' 했을 때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다. 실제 보장된 부분만 치면 2년 400만달러 계약이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서 400만달러는 선수 가치를 평가할때 절대 큰 액수가 아니다. LG 구단은 계속해서 우리 마무리 투수를 헐값에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지만, 선수가 '이 계약으로라도 메이저리그 꿈을 이루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호소했다. 솔직히 조건부 승인을 했을 때도 예견된 결과였다. 구단이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다. 선수의 꿈을 가로막는다는 이미지로 팬들에게 질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봤을때 LG는 잃은 것만 있다. 포스팅을 통해 얻는 이적료는 90만달러(약 11억원). LG가 없다고 아쉬워할 액수는 아니다.
고우석의 계약은 앞으로 메이저리그 성공 여부와 별개로, KBO리그 선수들에게 충분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한국 선수들에 대한 미국 구단들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고, 특히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졌던 불펜 투수들 역시 마이너리그 구인난과 더불어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길 수 있다. 벌써 몇몇 A급 투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 여부가 언급되고 있다. 몇년 전까지는 강정호 이후 타자들의 메이저리그 도전이 대세였다면 이제는 투수들까지 범위가 넓어진 셈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분명히 고무적이다.
하지만 구단들은 안전 장치를 새롭게 새워야 한다. 해외 진출의 경우, 선수들이 구단과의 상의보다도 에이전시를 통해 먼저 계획을 세우는 순서로 진행된다. 해외 진출이라는 높은 꿈을 대승적 차원에서 용인해주는 것도 프로 구단의 역할이지만, 서로 충분한 합의와 조건은 갖춰진 상태에서 보낼 준비할 시간도 필요하다. FA라면 문제가 안될 수 있지만, 포스팅을 통한 진출은 분명히 구단의 승인이 먼저다. 그만큼 선수와 구단이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한 후 포스팅 시기를 미리 논의하고 준비할 시간을 갖는 게 이상적이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