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27일 밤 예산 집행 최종시한을 앞두고 스위스 로잔 연락 사무소 개설을 전격 승인했다.
대한체육회는 국제 스포츠 외교력 강화를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가 있는 스위스 로잔에 국외 연락사무소를 설치할 것을 제안하고, 국회를 통해 올해 8억원, 내년 4억원 예산을 확보했으나 문체부가 이를 승인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의 대립이 격화됐다. 대한체육회는 "현지 실사와 IOC 등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마친 후 사무실 장소까지 확보, 문체부에 사업 승인을 요청했으나 예산 집행의 최종 승인 권한을 가진 문체부가 명확한 이유 없이 최종 결정을 미루고 있다'면서 연내 사업 승인을 재차 촉구했다.
문체부는 "대한체육회가 스위스 로잔에 설립을 제안하는 국외 연락사무소는 전세계적으로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중국의 경우 2022베이징동계올림픽 준비를 위해서 국외사무소를 설치했으나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돼 철수했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고, 대한체육회는 문체부가 국회를 통과한 예산 승인을 불허하는 데 대해 성명서 등을 통해 격렬히 항의하고 강력히 성토하며 체육인의 단체행동도 불사할 뜻을 전했다.
극으로 치닫는 듯했던 로잔 사무소 설치 논란은 27일 오후 일단락됐다. 문체부 관계자는 27일 밤 "대한체육회가 추진중인 IOC 현지 연락 사무소를 승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마지막 시한을 앞두고 실효성에 대해 끝까지 고민했으나 이미 예산을 확보하고 국회가 승인한 사안인 만큼 한시적 승인을 해주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일단 예산이 확보된 2년간 시행을 통해 실효성을 체크해보고 존속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촉즉발의 대립 양상에서 문체부가 대한체육회를 품는, 한발 양보를 선택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다음 행보에 눈길이 쏠린다.
이 회장은 27일 오전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제27차 정기이사회를 통해 "로잔 연락 사무소 설치 등 문체부가 체육회의 현안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강력하게 투쟁할 것"이라며 "그동안 문체부와 체육회 사이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내년 1월 감사원의 공익감사를 청구할 계획"이라며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이 회장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다. 반드시 체육계 현안을 실현할 것"이라며 문체부를 향한 날을 세웠다. 내달 16일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릴 1만명 체육인 대회에서 문체부를 비판하고, 3월 국회 잔디광장에서 체육인 행사를 열고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 설립 등을 주장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날 이사회 직후 대한체육회는 '이사 일동' 명의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업무 행태 관련 대한체육회 이사회 성명서'를 내고 '대한민국 스포츠 국격 향상과 스포츠 외교력 강화를 위한 로잔 연락사무소 설치'와 '9개월이 넘도록 뭉개고 있는 체육단체 임원의 정치적 중립성 강화를 위한 대한체육회 정관 개정'을 요구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문화체육관광부의 업무 행태 관련 대한체육회 이사회 성명서]
대한체육회 이사 일동은, 대한민국 체육의 산실인 대한체육회가 시대착오적인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불통 행정으로 창립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음에 통탄을 금치 못한다.
갑진년 새해 세계 스포츠 강대국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 정상적으로 치러지는 2024 파리올림픽을 통해 저마다 조국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스포츠 외교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한체육회도 한국스포츠의 명운이 걸린 새해를 한국 체육의 백년대계를 정립하는 중차대한 한 해로 정하고, 오랜 기간 착실히 준비를 해 왔다. 그러나 체육인들의 뼈를 깎고 다듬었던 노력은 문체부의 독선적이고 비타협적인 행태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봉착해 있다.
현장의 풍부한 경험 속에서 지속적으로 빚어낸 체육인들의 소중한 지혜는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졌고,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승리를 쟁취하려는 해병대 정신 체험을 통해 더 높은 곳을 지향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순수한 열정과 노력은 구시대적 발상으로 왜곡·폄훼되고 있다.
심지어 문체부 장관은 역사적으로 폐단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KOC 분리 등 해묵은 논쟁들을 다시 끄집어내, 진실을 호도하는 무책임한 발언으로 체육계의 분란을 조장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이사 일동은 이러한 문체부의 행태를 체육인들을 무시하는 시대착오적인 '구태(舊態)'로 규정하고, 체육인들의 총의(總意)를 모아 다음과 같이 정부의 각성을 촉구한다.
하나, 대한민국 스포츠 국격 향상과 스포츠 외교력 강화를 위한 로잔 연락사무소 설치를 즉각 허가하라!
하나, 9개월이 넘도록 뭉개고 있는 체육단체 임원의 정치적 중립성 강화를 위한 대한체육회 정관 개정을 즉각 허가하라!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국민"이고 "공직자 모두의 헌신이 곧 국민과 대한민국의 큰 자산"이라며 공직자들의 헌신을 강조했다.
문체부는 중앙행정부처로서 대통령의 이러한 국민 섬김의 국정철학을 본받아, 긴밀한 소통과 협의로 체육인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 마련과 업무추진에 나서야 할 것이다. 아울러 문체부 장관에게 대한체육회와 체육인을 무시하는 무책임한 발언에 대한 사과를 촉구한다.
또한, 대한체육회 이사 일동은 대한민국 스포츠의 백년대계를 설계할 수 있도록 정부조직으로서의 '국가스포츠위원회' 설립을 정부에 요구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체육인들의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경우, 체육가족들은 한마음이 되어 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로 강력하고 단결된 힘을 보여 줄 것임을 천명한다.
2023년 12월 27일
대한체육회 이사 일동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