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4강 신화'를 쓴 '고독한 승부사' 박종환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영면했다.
박 전 감독의 영결식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엄수됐다. 박 전 감독은 지난 7일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최근 코로나19으로 인한 호흡곤란, 패혈증이 겹쳐 건강이 악화했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대한축구협회는 한국축구의 위상을 드높였고, 축구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기리는 뜻에 따라 고인의 장례를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고인의 유족과 더불어 허정무 전 대전하나시티즌 이사장, 신연호 대한축구협회 이사 겸 고려대 감독, 황선홍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 등 축구계 후배들이 박 전 감독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고인의 영정사진 주변에는 수북한 흰 국화와 고인이 생전 받았던 대한민국 체육상 등 상장이 놓였다.
1938년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나 춘천고·경희대를 졸업하고 대한석탄공사에서 선수 생활을 한 박 전 감독은 1970년대 중반 약체팀이던 전남기계공고를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며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박 전 감독은 1983년 멕시코 청소년대표팀 감독 지휘봉을 잡아 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4강 신화를 썼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진출 전까지 한국축구사에 가장 찬란한 업적이었다. 이 대회에서 보인 한국은 기동력과 패스워크로 해외 언론으로부터 '붉은 악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이는 한국 축구대표팀 서포터스인 '붉은 악마'의 유래가 됐다.
박 전 감독은 이후 대표팀 감독을 이어가다, 프로 무대에 발을 들였다. 1989년에는 신생 프로팀인 일화 천마 감독을 맡았고, 1993년부터 3년 연속 K리그 챔피언을 차지하는 등 '명장'의 면모를 과시했다. 2001년 창립한 한국여자축구연맹의 초대 회장을 지냈고, 2002년 창단한 대구FC와 2013년 첫발을 내디딘 성남FC의 감독을 지냈다. 이후 2018년 K3 여주 FC 창단 총감독으로 부임해 2020년까지 활동했다.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진행된 영결식은 묵념으로 고인을 추모하며 시작됐다. 이어 김정배 협회 상근부회장이 박 전 감독의 약력을 소개했고, 박 전 감독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추모사는 '멕시코 4강 신화'를 함께 한 '제자' 신연호 고려대 감독이 맡았다. 신 감독은 "호탕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경기장을 누비시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갑자기 떠나셔서 황망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며 "당시는 고강도 훈련에 원망도 했지만, 그 덕에 영원히 잊지 못할 4강의 영광을 갖게 됐다. 당시 4강 신화는 세계 정상에 도전하는 지금의 한국축구를 만들었다"고 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 유족을 시작으로 축구계 인사들의 헌화가 이어졌다. 영결식 뒤 참석자들의 배웅 속에 운구차는 화장장으로 떠났다. 성남 일화 시절 고인의 애제자였던 이상윤 해설위원은 "나만 미워한다고 생각했는데, '축구 선수' 이상윤으로 만들어주셨다. 잊지 못할 분"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 회장은 "1983년에 이미 벌떼 축구, 토털 축구를 실현하신 감독님은 한국 축구의 기준을 제시해주셨다"며 "감독님이 이끈 청소년대회 4강은 우리 연령별 대표팀이 최근 좋은 성과를 내는 기반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추도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