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중국)=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대한민국과 북한이 5년 만에 다시 만났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이 적이 돼 겨뤘다.
29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북한의 항저우아시안게임 여자농구 조별리그 C조 2차전. 전 세계가 주목하는 매치업이었다.
얄궂은 운명이었다. 한국과 북한은 5년 만에 적이 돼 만났다. 둘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때는 단일팀을 꾸려 출격했다. 당시 남북 단일팀은 은메달을 합작,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거기까지였다. 이후 북한은 국제 무대에서 모습을 감췄다. 특히 2021년 도쿄올림픽 당시 코로나19를 이유로 불참을 선언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징계를 받았다. 2022년까지 국제 무대에 나설 수 없었다.
종적을 감췄던 북한이 항저우아시안게임을 통해 돌아왔다. 여자농구는 이번 대회 첫 구기종목 격돌이었다. 강이슬 박지수(이상 청주 KB스타즈) 박지현(아산 우리은행)은 5년 전 한솥밥을 먹었던 로숙영 김혜연과 적으로 싸웠다. 정성심 북한 감독은 5년 전 단일팀 코치였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남북대결이 펼쳐졌다. 북한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지난 27일 대만과의 경기에서 91대77로 승리했다. 특히 2m5 박진아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다. 박진아는 대만전에서 혼자 51점을 넣었다.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이었다. 경기 시작 전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경기장에는 한국의 태극기와 북한의 인공기가 동시에 휘날렸다. 한국과 북한의 응원단은 세 블럭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보이지 않는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북한은 2층엔 선수단, 4층엔 대규모 응원단을 포진시켰다.
점프볼. 양 팀 선수들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슛 밸런스는 흔들렸고, 패스 실수가 이어졌다. 첫 득점은 한국의 몫이었다. 한국이 강이슬의 득점으로 포문을 열었다. 북한은 2분30여 동안 침묵했다. 작전 시간을 요청해 전열을 가다듬었다. 경기 시작 4분 25초 북한의 첫 득점이 나왔다. '괴물' 박진아의 골밑 득점이었다. 그 순간 체육관이 흔들릴 정도로 큰 함성이 울려퍼졌다. 북한에선 '이겨라, 이겨라, 조선 이겨라' 응원가가 울려 퍼졌다. 중국 팬들도 북한 득점에 환호했다. 중국은 북한의 대표적인 우방국이다. 북한이 점수 차를 벌리자 '잘한다, 잘한다, 조선 잘한다'가 울려 퍼졌다.
코트 위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치열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상대 선수가 쓰러졌을 때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는 모습도 없었다. 눈길 한 번 마주치지 않은 채 오직 공을 두고 싸웠다.
치열했던 경기가 끝났다. 한국이 81대62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2연승으로 최종전 결과와 상관 없이 8강 진출을 확정했다.
항저우(중국)=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