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야, 자랑스러운 아빠가 될게."
'어펜져스(어벤져스+펜싱)' 구본길(34·국민체육진흥공단)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꿈의 4연패 역사에 도전한다. 23일 개회식에서 대한민국 기수로 나섰던 구본길은 25일 항저우 전자대 체육관에서 열릴 항저우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사상 첫 4연패 위업에 도전한다. 2010년 광저우, 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대회에서 3개 대회 연속 개인전 정상에 섰다. 인천대회, 자카르타-팔렘방대회에선 단체전 '2관왕 2연패'를 기록했다. 그가 '2관왕 3연패'에 성공할 경우 총 7개의 금메달을 보유하게 된다. 역대 한국인 아시안게임 최다 금메달리스트로 우뚝 설 수 있다. 현재 하계 아시안게임 최다 금메달 기록은 수영 박태환, 펜싱 남현희, 볼링 류서연이 보유한 6개다.
'새 역사' 도전을 앞두고 구본길은 "4연패, 최다메달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2010년 광저우에서 정상에 선 스물한 살의 금메달리스트는 이후 13년간 정상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 아시아 선수들의 기량도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남자 사브르 절대 1강, '어펜져스'를 향한 견제도 심해졌다. 가장 오래, 가장 잘하는 선수로 살아남은 '디펜딩챔피언' 구본길은 "도전 자체만으로 영광"이라는 겸손한 각오를 전했다. 개인전 출전엔 행운도 따랐다. 항저우 대회가 1년 연기 되면서 구본길은 국가당 2명인 개인전 출전 기회를 잡게 됐다. "작년에 개최됐다면 개인전에 나설 수 없었다. 운이 좋았다. 시대, 세대 운도 타고 났다. 내 위에 (오)은석, (원)우영, (김)정환이형 같은 대단한 선배들이 있었고, 아래 (김)준호, (오)상욱이같은 훌륭한 후배가 있다. 덕분에 이렇게 오래 정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한국 펜싱, 세대교체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그는 "정환이형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후배들의 기량을 끌어올려줄 수 있는 선배로 함께 오래 버텨줄 것"이라는 의지를 전했다.
지난 시즌까지 승승장구해온 '펜싱코리아'는 최근 경쟁국들의 집중견제 속에 고전했다. '40세 맏형' 김정환(국민체육진흥공단), '막내온탑' 오상욱(대전시청), '베테랑' 김준호(화성시청)로 구성된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지난 7월 세계선수권에서 '은 1, 동 2'에 그쳤다. 단체전 3연패에서 멈춰 섰다. 지난 6월 중국 우시 아시아선수권에선 일본에 밀려 종합 2위, 13연패를 놓쳤다. '에이스' 구본길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5년 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처럼 개인전에선 오상욱과 동반 결승행이 목표. 단체전에선 김정환, 김준호와 3연패에 도전한다. 펜싱코리아, 에펜져스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다시 금빛 찌르기에 나선다.
구본길은 5년 전 자카르타대회 개인전 금메달의 기억을 떠올렸다. 후배 오상욱과의 결승전에서 한끗차 승리를 거뒀고, 이후 단체전 금메달을 함께 따내며 웃었다. "마음을 비운 게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번 대회 금메달을 따면 역사라고 하는데, 숫자, 역사 의식하지 않고 부담없이 도전할 것이다. 다행히도 다음 아시안게임이 4년 후가 아닌 3년 후다. (최다 금메달을)이번에 해내면 좋겠지만 안되더라도 될 때까지 후배들과 함께 계속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4연패 역사의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는 역시 아들 '우주'다. 2019년 승무원 출신 박은주씨와 결혼한 구본길은 지난 3월 득남했다. "아빠가 세계를 정복했으니, 우주를 정복하라는 뜻"이라고 작명 이유를 귀띔했다. 항저우 첫 피스트를 앞두고 아들에게 굳게 약속했다. "우주야, 네가 태어나고 첫 메이저 종합대회, 꼭 자랑스러운 아빠가 될게. 파이팅!"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