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좋지 않은 예감은 좀처럼 틀리지 않는다. 사실은 예감이 아니라 예상한 결과대로 흘러가지 않길 바라는 바람이기 때문이다.
한국 남자배구가 역대급 참사에 직면했다. 17년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꿈꾸던 한국은 22일 열린 12강 토너먼트 파키스탄전에서 0대3 셧아웃 패배,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 오는 24일 바레인과의 7~12위 결정전을 치르는 처지가 됐다.
풀세트 접전 끝에 패했던 지난 인도전과 양상은 대동소이했다. 한국이 훨씬 압도적으로 패했다는 점만 달랐다.
파키스탄의 2m5의 미들블로커 압둘 자히르에게 고전했다. 한국의 강서브는 잘 되지 않았고, 중앙 속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경복을 중심으로 한 큰 공격이 상대 블로킹 벽에 막히자 허무하게 패했다.
오히려 파키스탄이 타점 높은 공격으로 압박해왔다. 자신감이 붙으니 약점인 수비에도 안정감이 생겼다. 허리부상 중인 정지석을 투입하는 과감한 승부수도 소용이 없었다.
우리 대표팀의 노메달은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이후 무려 61년만이다. 1966 방콕 아시안게임 이후 14개 대회 연속 시상대에 올라 금메달 3개, 은메달 7개, 동메달 3개를 따냈던 남자배구다. 바로 지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결승전에서 이란에 패하긴 했지만 은메달을 품에 안았다.
V리그는 연봉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연봉 10억8000만원의 세터(한선수), 9억2000만원(정지석) 8억원(허수봉) 7억원(전광인) 아웃사이드히터, 5억원 아포짓(임동혁), 5억5000만원의 미들블로커(김규민)가 총출동했다. 한국의 세계랭킹은 27위.
하지만 배구계 약체로 불리는 73위 인도에 패했고, 51위 파키스탄에 덜미를 잡혔다. 한국이 이긴 상대는 세계랭킹도 없는 캄보디아 뿐이다.
우물안 개구리라는 말이 정확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날개 공격수들은 인도-파키스탄 같은 배구 후진국에게도 통하지 않았다. 높이와 파워를 이긴다는 세밀함도 우리에겐 없었다. 아시아 무대에서조차 동네북이었다.
선수들은 물론 2019년부터 대표팀 지휘봉을 잡아온 임도헌 감독 역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말 그대로 한국 배구 역사에 남을 수모, 항저우 대참사다.
수원=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