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안소윤 기자] 1947년 태극마크를 가슴에 새기고 달렸던 이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스크린에 펼쳐진다. 한국 마라톤의 전설 손기정과 그의 제자 서윤복의 굳은 의지와 용기를 담은 영화 '1947 보스톤'이 추석 극장가를 풍성하게 채운다.
27일 개봉하는 영화 '1947 보스톤'은 1947년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마라토너들의 도전과 가슴 벅찬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마이웨이', '장수상회' 등을 연출한 강제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영광의 순간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손기정은 '손 키테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높은 시상대에 올랐다. 당당하게 1등을 했다는 기쁨보다는 수치심으로 가득했고, 결국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월계수로 가슴에 단 일장기를 가렸다. 민족의 영웅에서 하루아침에 일본의 탄압을 받게 된 손기정은 마라토너로서 자격도 잃게 됐다.
광복 이후 조국은 독립했지만,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운 세계 신기록은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의 것으로 기록됐다. 이후 그는 빼앗긴 조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제2의 손기정으로 주목받았던 대학생 서윤복과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준비를 결심했다.
반면 서윤복에게는 꿈마저도 사치였다. 마라톤 영웅 손기정을 롤모델로 삼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달리기를 제대로 배운 적 없었고 아픈 어머니를 돌봐야 했기 때문. 하지만 어렸을 때 생계를 위해 각종 배달 일을 하던 것이 오히려 마라토너로서 성장할 수 있는 큰 자양분이 됐다. 손기정에 보스턴 마라톤 출전 제안을 받은 서윤복은 우여곡절 끝에 태극마크를 단 첫 번째 선수가 되기로 다짐했다.
'1947 보스톤'은 탄탄하게 쌓아 올린 스토리에 배우들의 열연까지 더해져 빛을 발했다. 손기정을 연기한 하정우는 단단하면서도 다부진 체격과 시원시원한 비주얼로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했다. 극의 중심에 선 그는 과거 선수 시절에 겪었던 힘든 과정부터 리더십을 갖춘 국가대표팀 감독의 모습까지 입체적으로 표현해 작품의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무엇보다 국가대표의 마음가짐으로 작품에 임했던 임시완의 진심은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불굴의 마라토너 서윤복으로 분한 그는 실제 마라톤 선수들의 훈련량을 소화하며 체지방 6%대까지 낮추는 등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촬영이 시작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마라톤 연습을 이어가며 마라토너의 강한 정신력과 투지를 엿볼 수 있게 했다.
"과거는 곧 미래"라고 강조한 강제규 감독은 픽션을 최소화하고 실제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다뤘다. 작품이 주는 메시지처럼 오랜 기다림 끝에 극장가를 찾아온 '1947 보스톤'이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안겨줄 수 있을지 기대가 높아진다.
안소윤 기자 antahn22@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