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실시간중계 직관!" 1년2개월만에 확 달라진 야구장,시각장애'찐팬'들의 행복한 야구직관[현장동행기2]

by

지난 14일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SSG랜더스전, 치열한 5위 전쟁이 예고된 서울 잠실구장, 경기 50분전 2호선 종합운동장역 5번 출구 앞에서 '시각장애 야구팬' 안제영씨(28)와 이창현씨(33)를 만났다.

지난해 7월 22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시각장애 야구팬들의 직관을 동행 취재한 지 1년 2개월만이다. 야구는 시각장애인들의 '최애' 스포츠 중 하나다. 눈깜짝할 새 공수가 전환되는 축구, 농구에 비해 야구는 여백이 있고, 상세한 기록 분석과 해설이 가능하다. 라디오 중계와 함께 야구 직관을 즐겨왔다. 하지만 어느날 라디오 중계가 모바일앱으로 대체되면서 뜻밖의 '장벽'이 생겼다. 시간 지연 문제가 발생했다. 관중의 함성이 쏟아진 15초 후에야 뒤늦게 상황을 인지하게 되면서 시각장애인들이 직관을 제대로 즐길 수 없게 됐다. 실시간 응원에서 소외됐다.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출신 김예지 국회의원은 그날 고척돔에서 '모두의 스포츠 관람권'을 위한 입법 의지를 되새겼다. "시각장애인들이 스포츠 중계 서비스에서 배제되고 있다. '장애인 스포츠 관람권 3법'을 꼭 통과시켜야겠다는 의지가 솟는다"고 했다. 허구연 KBO 총재 역시 공감과 지지의 뜻을 전했다.

김 의원이 실행에 나섰다. 마침내 지난 5월 25일 그녀가 대표발의한 장애인의 문화 향유, 정보 접근권 향상을 위한 스포츠산업진흥법 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가와 지자체가 스포츠산업 진흥을 위한 각종 시책 수립 시행시 장애인을 위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도록 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장애인 스포츠 관람권 보장을 위한 사업이 원활하게 수행될 수 있도록 행정적, 재정적 특별지원도 명시했다. 법안 통과 직후 KBO가 발빠르게 움직였다. 8월 4일부터 잠실, 사직, 광주 3개구장에서 '시각장애인 현장 관람객 대상 음성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다시 찾은 야구장, 신세계가 열렸다.

▶시각장애 팬 위한 실시간 중계, 행복한 야구 직관

서울 신목중 국어교사인 안제영씨는 롯데 골수팬. 2008년 롯데가 3위에 오르던 열세 살 때 아버지와 사직구장 첫 직관 이후 15년째 한결같이 롯데팬이다. 이창현씨는 두산의 열혈팬이다. 2006년 WBC를 통해 야구에 '입덕'한 이후 2008년 베이징올림픽 김경문호를 응원하면서 두산팬이 됐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현장 음성지원 서비스가 개시된 후 제영씨는 이날이 세 번째 직관, 창현씨는 처음이라고 했다. 지인 장현우, 김병현씨가 각각 가이드로 동행했다. 잠실구장에서 음성지원 단말기를 받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해보기로 했다. 단말기 수령 방법은 두 가지. 첫째, 1577-7211로 전화하면 단말기를 좌석까지 가져다주는 서비스가 있다. 둘째, 안내 데스크를 방문해 직접 수령하는 방법. 다음에 올 팬들을 위해 쉬운 '전화' 대신 '1루 출입구 2~3게이트 안내데스크'를 직접 찾아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초행길, 길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안씨가 전화로 위치를 재확인한 후 단말기 수령 미션에 성공했다. "전화 서비스가 아무래도 더 편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테이블석에 자리를 잡은 후 단말기를 귀에 꽂고 치킨과 맥주를 앞에 놓은 이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창현씨는 "현장음과 전혀 차이 나지 않는 중계다. 같이 응원하고 같이 즐거워하고 같이 아까워할 수 있다"고 했다. "시각장애인들이 잠실, 사직, 광주만 가는 건 아니니 전국 어디에서도 이 중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제영씨 역시 "예전엔 15초 느린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는데 사직구장에서 처음 이걸 써보고 고척에 가니 힘들더라. 하루 빨리 전구장에 도입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인터뷰 중 옆자리 팬이 단말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같이 온 제 동생이 시각장애인인데요. 혹시 현장중계 서비스가 있나요?" 곧이어 단말기를 받아든 '두산 팬' 손지민양(가명)의 표정도 환해졌다. "모바일 중계는 딜레이가 있었다. 주변 반응을 듣고 상황을 알게 됐는데 실시간으로 들으니 너무 좋다. 다음 직관 땐 무조건 신청해야겠다"고 했다.

제영씨와 창현씨는 현장 음성지원 서비스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길 희망했다. "인터파크, 티켓링크 등 예매 페이지에서 예매 후 시각장애인 중계서비스가 있다는 안내문을 자동으로 띄워줬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서비스가 시작된 걸 아직 모르고 있다. 보도자료도 더 많이 뿌리고 구단 차원 홍보도 더 많이 됐으면 한다."

제영씨는 현장 중계 향상을 위한 제언도 아끼지 않았다. "공수 교대시엔 응원가가 나오는데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장내 아나운서 코멘트를 송출해주면 좋겠다. 그래야 시각장애인들도 이벤트에 참가할 수 있다. 지금은 무슨 이벤트를 하는지 몰라서 참가를 못한다. 지금도 충분히 만족하지만 이런 부분까지도 챙겨주신다면 더 좋겠다."

매시즌 롯데의 가을야구를 염원하는 그에게 야구는 일상이다. '야구란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제영씨는 "퇴근시간 알람"이라고 했다. "오후 6시가 넘으면 야구중계를 켜고 저녁을 준비한다. 야구를 보면서 저녁을 먹는다. 월요일은 야구가 없어서 슬프다. 방송 3사 야구 리뷰 프로그램을 빼놓지 않고 보며 아쉬움을 달랜다."

▶김예지 의원 "모두의 스포츠관람권, KBO의 적극적 실행에 감사"

1년 2개월 전 그날처럼 김예지 의원과 허구연 KBO 총재도 경기를 직관했다. 단말기 이어폰을 귀에 꽂은 김예지 의원이 활짝 웃었다. "진짜 실시간이다. 타석의 타구 소리와 중계 소리가 동시에 들린다." 김 의원은 "이제 실시간으로 똑같이 관람할 수 있게 됐다. 야구를 좋아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겐 신세계가 열렸다"며 흐뭇함을 전했다. "아직 3개 구장에서만 서비스가 시행중이다. 스포츠산업진흥법이 통과된 만큼 각 지자체도 관심을 가져주셔서 전 구장으로 확대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어 KBO의 적극적 실천에도 감사를 전했다. "국회에서 아무리 법안을 발의해도 시행되는 건 굉장히 더디다. 그런데 이번 음성지원 시스템의 경우 법안 통과와 실행이 거의 동시에 진행됐다. KBO의 결단과 리더의 적극적인 역할이 있었다. 모든 정부 정책들이 누구 하나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허구연 총재님이 말씀하신 협동과 배려, 공감의 스포츠 정신"이라고 했다.

허구연 총재는 "비장애인뿐 아니라 장애인에게 프로야구가 주는 기쁨은 대단히 크다. 생활의 일부다. KBO는 앞으로도 배리어프리한 경기장을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을 위한 좌석도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지자체들도 스포츠 콘텐츠의 가치를 높이고 더 많은 팬들이 찾도록 더 많이 신경써야 한다"고 했다. '장애 당사자' 제영씨와 창현씨는 "프로야구가 42년차인데 현장중계가 기술적으로 안되는 게 아니었다. 2000년대 초에도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아무도 앞장서는 사람이 없었다. 김 의원님 임기가 내년 4월까지인데 이후가 걱정이다.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두산이 0-1로 뒤지던 7회 SSG 최주환의 솔로 홈런, '두산 팬' 창현씨가 갑자기 말을 잃었다. 야구가 좋은 이유를 어렵게 묻자 "야구의 가장 큰 매력은 9회까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이라고 했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닌' 야구, '찐 야구팬' 창현씨의 말은 예언이 됐다. 0-2로 패색이 짙던 9회말 2사 2-3루, 두산 허경민의 끝내기 안타가 작렬했다. 두산이 SSG를 3대2로 이겼다. 잠실=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