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LG 트윈스 오지환과 박해민. 리그를 대표하는 '순둥이' 선수들이다.
이들조차 잇따른 사구에 발끈했다.
'캡틴' 오지환은 배트로 땅을 쓸며 불쾌한 감정을 노출했다. 한 이닝에 3번째 사구를 맞은 박해민은 투수 쪽을 향했다.
KT 고참 박병호, 박경수가 말리기 바빴다. "절대 고의가 아니"라고 했다. "실수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빈볼로 오해할 수 있는 정황이긴 했다.
큰 점수 차 도루를 둘러싸고 서로의 생각이 살짝 달랐다.
KT는 3-6으로 뒤진 6회말 무사 1루 찬스를 무산시킨 뒤 7회초 수비에 앞서 주전을 대거 교체했다. 포수 장성우를 강현우로, 유격수 김상수를 장준원으로, 2루수를 신본기로 바꿨다. 8회초 수비에 앞서 전날 끝내기 안타의 주인공 황재균을 빼고 송민섭을 넣었다. 3점 차에 아직 2이닝이 남은 상황. 포기라고 볼 수는 없었다. 주말 SSG와 더블헤더 포함, 홈 4연전 총력전을 위한 에너지 세이브 차원의 교체로 보였다.
당연히 LG로선 추가득점이 절실했다. 전날 악몽 같은 9회말 3점 차 역전패를 당한 팀으로선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7-3으로 앞선 LG의 9회초 공격에서 터졌다.
KT가 김영현을 내리고 좌완 하준호를 올렸다.
선두 홍창기가 안타로 출루했다. 신민재의 희생번트로 1사 2루. 김현수의 안타로 1사 1,3루가 되자 1루 대주자 최승민을 투입했다. 1루수가 빠져 있었지만 최승민은 후속 정주현 타석 때 2루를 훔쳤다. 1사 2,3루. 포수는 2루에 던지지도 않았다. 4점 차에 2루 도루. 통상 도루할 수 있는 점수 차라고 볼 수 있었지만, KT 1루수가 베이스를 지키지 않고 뒤로 빠져 있는 상황이 문제였다.
오해를 부를 만 했다. 정주현의 땅볼을 전진수비 하던 2루수라 뒤로 빠뜨리며 3-9가 됐다. 승부는 사실상 끝이었다.
하준호는 이날 유독 좌타자 몸쪽 승부를 많이 했다. 몸쪽 제구가 들쑥날쑥 했다. 바짝 붙이는 공에 김현수가 화들짝 놀라 피하기도 했다.
문제는 3-9로 점수 차가 벌어진 1사 1루부터였다. 하준호가 문보경을 향해 2구 연속 몸쪽 깊숙한 공을 던졌다. 문보경이 이 공들을 모두 피하며 볼넷으로 출루했다. 1사 1,2루.
이날 적시타와 투런 홈런을 날린 오지환 타석 때 2구째 몸에 맞는 공이 나왔다. 직구에 등을 강타당한 오지환은 투수를 향해 불만을 표하고, 배트를 땅바닥에 쓸듯 내리치며 불쾌감을 표했다.
김민성이 6구 승부 끝에 체인지업에 삼진을 당했다. 문성주가 6구째 체인지업에 또 다시 몸에 맞는 볼로 출루했다. 2사 만루. 이번에는 변화구 승부라 고의성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후속 박해민에게 초구 142㎞ 직구에 오른쪽 어깨를 스쳐 맞았다. 박해민이 발끈했다. 배트를 놓고 헬멧을 벗어 던진 뒤 투수 쪽을 향했다. 포수와 주심이 달려나와 진정시켰다. 양 팀 선수들이 우루루 몰려나왔다. 이례적인 1이닝 3차례의 사구에 오해가 폭발했다.
하지만 대치는 격화되지 않았다. 양 팀 모두 선을 넘지 않았다. 고참급 선수들이 빠르게 오해를 풀었다. 경기 후에도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됐다.
중계 해설을 한 박용택 위원도 "일부러 맞히는 빈볼 상황은 아니다. 양 팀 선수들도 알 것이다. 연속적인 몸에 맞는 공이 나오다보니 감정적으로 흥분할 수 있는 것"이라 해석했다.
오지환은 경기 후 "순간 욱하긴 했다. 오해 받을 수 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주자로 나갔을 때 병호 형이나 경수 형이 실수니까 이해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넘어간 것 같다. 이런 걸로 막 감정적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좀 껄끄럽게 마지막 모습들이 그렇게 돼서 아쉽지만 이겼으니까 괜찮다"고 말했다.
미리 보는 한국시리즈를 방불케 했던 1위 LG와 2위 KT 간 3연전. LG의 위닝시리즈로 끝이 났지만 총성 없는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 앞으로 양 팀 간 미묘한 신경전은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