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빛 기자]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의 테리우스 강민이 떠오르지 않는다. 26년이나 흘러 기억이 가물가물해졌다기보다는, 찌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아재' 캐릭터로 '원조 한류스타'를 지웠기 때문이다. 배우 안재욱이 연기 생활 30년에도 끊임 없는 변신을 시도 중이다.
안재욱은 지난 22일 종영한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남남'에서 박진홍 역할로 열연했다. '남남'은 철부지 엄마 김은미(전혜진)와 쿨한 딸 김진희(최수영)의 '남남' 같은 대환장 한 집 살이와 그녀들의 썸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로, 박진홍은 김진희의 친부이자, 김은미의 첫사랑으로 나오는 인물이다.
특히 자기 관리에 철저한 FM형 전문의인데, 일탈이라곤 없을 것 같은 그의 인생에 유일한 예외가 바로 은미였다. 미성년자 시절 은미와 철없는 사랑으로 2세 진희가 생기지만, 이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다 약 30년 만에 우연히 은미를 만나, 딸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다.
안재욱은 박진홍 역할에 대해 "제가 경험해 보지 못한 캐릭터이더라. 그런데 순애보적이고 무조건적이라는 표현이 와닿아야 하는데, 이 경계가 애매했다. 은미를 다시 만났을 때 사랑이라는 것이 죄책감과 책임감에서 더 나아가, 그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가지고 있는 진홍의 마음을 잘 이해하게끔 전달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다"고 말했다.
'찌질남'의 대명사가 된 것도 언급했다. "제가 제일 많이 들은 소리가 찌질하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많이 들은 적이 없었다(웃음). 그런데 찌찔한 매력인 진짜 찌질하게만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작품을 보시고, 진홍이라는 애의 인생도 이해되실 수 있도록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은미와 진희의 삶이 저를 만났다고 해서, 미안함에 앞서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 진부하게 보이기는 싫었다. 진홍이 입장에서는 한 번도 집안이나 사랑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끌어 보고 그런 기회조차 없었다. 그래서 진희와 은미에 대한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아 절실했던 것 같다."
이어 극 중 진홍이 바라본 두 모녀의 삶도 거론했다. "모녀의 삶이 이해가 간다"는 안재욱은 "진홍도 철없는 느낌으로는 처음에는 '수영이 같은 큰딸이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 그대로 저랑 은미랑 사고 친 건데, 성숙해지는 딸이 있어야 이 이야기가 성립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막 진희에게 이제 와서 아빠가 된 입장이라며 눈빛 하나하나 적극적으로 하고, 은미에게도 남편으로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운명적인 만남을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진희를 바라볼 때 딸로 측은감보다는, 최대한 티 안 내고 쿨하게 보이고 부담되지 않는 눈빛을 하려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진희가 불편할 테니까"고 짚었다.
진홍을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한 점도 이러한 것들이었다고. 안재욱은 "진홍이에게는 내 의지와 상관없는 헤어짐이었어도, 되게 책임감 없는 인물처럼 보일 수도 있고, 이제와서 권리를 찾으려고 한 것처럼 해서 자칫하면 미워 보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표현할 때 중요했다"라며 "답답하고 찌질한 진홍이지만 그걸로 끝나면 안 된다고 봤다. 공감대가 얼마나 전달 될지에 궁금증이 있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의외로 더 좋아해 주셨다. 시청자들이 그 경계선을 좋게 잘 봐주신 거 같다"고 고백했다.
기억 남는 반응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긴다. 안재욱은 두 모녀 사이를 맴도는 미스터리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됐다는 것을 떠올렸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는데 '범인이 안재욱 아냐?'라고 하더라. 아빠가 범인이면 어쩌냐. 그런 반응은 진짜 생각하지 못했다. 그 얘기 듣고 한창 웃었다. 백마 탄 찌질이라고 하더라(웃음)."
모녀 이야기인 만큼, 안재욱의 분량은 비교적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원조 한류스타인 그가 받쳐주는 서브 캐릭터를 맡은 셈. 그러나 안재욱은 "저는 늘 받쳐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별은 내 가슴에'도 최진실 씨를 받쳐줬다고 생각하고, 제가 한 작품들은 늘 상대배우가 더 유명해진 것 같다. 근데 그게 원래 제 스타일이"라며 "연기할 때는 오히려 강하거나 색깔이 진한 역할이 연기하기 더 쉬운 것 같다. 캐릭터가 강하면 표현하자고 한 것도 극대화할 수 있는데, 일반적인 역할이 개인적으로 더 어려웠다. 진홍이도 그래서, 감독님과 전혜진 씨와 서로 대화를 많이 했다"고 했다.
이어 "지금 보이는 모습보다 더 나이 들었으면 했다"는 안재욱은 "사실 동안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저는 나이 들어 보였으면 하는데, 그런 말을 하면 주위 형들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게 너를 몇 년 더 해 먹을 수 있는 원동력인데 무슨 말 하냐'고 하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나이를 들다 보니까, 외적인 모습을 꾸미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느끼지 못한 나의 깊이감이 있을 것이라 본다. 그런 저의 변화들이 캐릭터를 맡았을 때 잘 녹아내길 바란다. 경력 따로 연륜 따로가 아니라, 지금 느낄 수 있는 공감대가 역할에도 잘 어울려서 나왔으면 한다. 늘 그런 마음이다. 앞으로도 했던 역할을 했던 거보다 안 했던 새로운 걸 하게 될 테니"라고 덧붙였다.
벌써 연기 경력 30년 차 배우다. 그럼에도 "아직도 늘 걱정하고 고민한다"는 안재욱은 "1년 1년을 따지면서 하는 편은 아니다. 최근에 MBC 공채 동기들과 만났는데, 30년이라는 말이 나와서 알았다. 사실 특별한 것은 없다. 30년이라고 제가 무게감이 생긴 것 같지도 않고 깊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냥 고민했던 부분과 잘 맞아떨어졌다는 부분에 기뻐하기도 하고, 미처 하지 못했던 부분이 나오면 숙제가 되기도 하고. 고민을 늘 많이 한다. 사실 시청자 평가도 연연하면 힘들더라. 내 스스로가 현혹되면 안 된다고 본다. 만 명이면 만 명이 다 나를 좋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큰 기대 없이 제 공연을 보러 왔는데, 오늘 공연으로 안재욱 팬이 되는 몇 명만 생긴다면 성공한 것이라 본다"고 밝혔다.
정빛 기자 rightligh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