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독일)=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출발선 앞에 선 안정민(15)군은 해맑은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출발 신호음이 울리자 트랙을 벗어나지 않고 똑바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달리면서도 미소는 그대로였다.
20일(한국시각), 발달장애인들의 대축제 '2023년 스페셜올림픽 세계 하계대회'가 열린 독일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 옆 육상 트랙을 달리는 정민군의 질주를 보며 톰 행크스가 열연한 '포레스트 검프'가 오버랩됐다. 해맑은 표정과 가벼운 발걸음, 그것은 정민군이 달리는 이유를 고스란히 설명했다.
마주 앉은 정민군에게 한 첫 질문은 '달리는 게 왜 좋아요?'였다. 장애 정도가 심한 정민군은 임윤희 육상 대표팀 감독과 그림자처럼 붙어서 정민군 등 육상 선수들을 돕는 박재형 스페셜올림픽코리아 주임의 도움을 받아 "재밌어요"라고 고백했다.
정민군은 경기 당일 컨디션과 기분에 따라 200m 기록이 들쭉날쭉했다. 엘리트 대회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성적보단 도전, 그리고 단결과 화합을 중시하는 '스페셜올림픽'에선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중요한 건 정민군이 수많은 관중 앞에서 외국 선수들과 '함꼐' 경쟁하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정민군은 200m 종목에서 다섯번째 승리자로 등극해 시상대에 올라서도 해맑에 웃는다.
정민군에겐 부모와 떨어져 먼 독일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한 것 자체가 도전이다. 박 주임은 "정민군이 이렇게 멀리 나온 대회는 처음이다. 불안감을 느낄 법한데, 잠도 잘 자고 잘 먹고, 적응을 잘 했다. 아마 우리 선수들 중에서 밥은 제일 잘 먹을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 "경기가 끝나면 육상 선수들과 함께 숙소 근처를 산책하곤 한다. 명소를 보거나, 외국인들과 인사하는 것도 신기해한다. '스페셜올림픽'에선 각국 선수, 스태프들과 배지를 교환하는데, 정민군이 은근히 친화력이 좋아서 먼저 다가가 배지를 바꾸기도 했다"고 말했다.
임 감독은 "난 엘리트 지도자를 맡다가 지난 2019년 아부다비 스페셜올림픽에서 인연이 돼서 장애인 관련 자격증을 땄다. 이번에 두번째로 팀을 맡게 됐다"며 "정민군을 비롯한 우리 선수들이 올림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운동을 해서 다양한 대회를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정민군은 100m 종목에 도전하고 있다. 메달을 따지 못해도 정민군은 괘념치 않을 것이다. 달리는 게 즐거우니까. 베를린(독일)=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