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농구인을 무시하는 처사다."
최근 대구 한국가스공사의 유도훈 감독 경질을 두고 주변 농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 감독과 결별하는 과정에서 당사자뿐 아니라 동료 농구인들에게 나쁜 선례와 상처를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 1일 보도자료를 내고 신선우 총감독, 이민형 단장, 유도훈 감독, 김승환 수석코치에 대해 계약을 해지하기로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가스공사는 "구단의 효율적 운영 방안을 논의한 끝에 신임 단장으로 내부 임원인 김병식 홍보실장을 선임했다. 타 구단의 조직 체계와 같이 내부 임원을 단장으로 선임함으로써 구단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프로농구단의 효율적 의사결정 및 합리적 선수단 운영 등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유 감독은 지난 4일 입장문을 내고 "최근 회사 측에서 시즌 준비를 앞두고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해왔다. 제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함은 물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해지 사유를 제시했다"며 "회사의 계약 해지 사유와 통보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심사숙고해 결정할 계획"이라며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이에 농구계가 발끈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동업자 정신'이 아니라 가스공사의 처리 방식이 프로스포츠계 질서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렇게 마음대로 잘라내면 누가 가스공사 지도자로 가고 싶겠느냐. 전체 농구인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인상만 준다"는 볼멘 소리도 있다.
농구계의 의견을 종합하면 가스공사의 이번 구조조정을 예견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으로 집권당이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바뀐 이후 가스공사 수장도 '정권 교체'가 됐다.
정권이 바뀌면 으례 그렇듯 '전임 정권 흔적 지우기'는 예측 가능한 수순이었다. 여기에 가스공사는 극심한 재정난에 빠진 상태라 어떻게든 개편이 불가피했다. 이런 가운데 채희봉 전 사장이 전격 인수해 창단한 농구단이 점검 대상에 들었고 영입 과정에서 말이 많았던 총감독, 단장직이 '불필요한 자리'로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대다수 농구인들이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유 감독까지 '도매급'으로 취급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유 감독은 가스공사의 전신인 전자랜드 시절부터 14년간 같은 팀에서 몸담아 왔다. 지휘봉만 잡은 게 아니라 매년 재정 위기를 겪고 있던 전자랜드를 플레이오프 단골팀으로 끌어올리며 '명장' 반열에도 올랐다. 타 구단의 감독 러브콜이 수차례 있었지만 인정과 의리 때문에 '가난한' 전자랜드를 떠나지 못했다. 2021년 가스공사가 전자랜드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능력으로 인정받은 유 감독을 선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주변 농구계 누구도 유 감독의 '고용 승계'를 '이상한 인사'라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였다.
논란이 됐던 총감독과 단장 선임은 유 감독이 부임하고 한참 뒤의 일이었다. "총감독-단장의 사례와 '결'이 다른데 유 감독의 지도자로서 과거 공적과 능력까지 모두 무시한 채 '한통속' 취급하는 것은 과한 처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가스공사는 마지막 예우도 지키지 않았다. 프로농구뿐 아니라 다른 프로 종목에서 계약기간이 남은 감독을 경질하면서 잔여 연봉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잔여 연봉을 해결하기 싫으면 계약서 대로 임기를 보장하면 된다는 게 '상도의'이자 스포츠계 원칙이다.
가스공사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 감독과의 결별을 결정해 버렸다. 유 감독이 입장문에서 '명예훼손', '용납할 수 없는 해지 사유'를 언급한 것에서도 가스공사가 얼마나 일방적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유 감독의 사정을 잘 아는 농구인은 "유 감독이 당장 먹고 살기 힘든 것도 아니고…, 잔여 연봉을 탐내는 게 아니다. 이렇게 처절하게 '을'이 돼어서 물러나면 후배 감독들에게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기에 저항하고 있다"고 말했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