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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인호 대한스키협회 회장 "가리왕산 스키장 존치 필수, 미래를 생각한 정책결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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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오자마자 경사가 생겨서 기분 좋습니다."

한국 스키·스노보드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안긴 이채운(17·수리고)의 쾌거로 운을 떼자, 김인호 대한스키협회 회장(56)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김 회장은 지난달 8일 대한스키협회 제24대 회장에 올랐다. 그는 1993년 2월, 롯데그룹 공채로 입사해 롯데중앙연구소, 코리아세븐, 그룹정책본부 국제실을 거쳐 롯데홈쇼핑 전략기획, 해외사업, DT 사업본부장 등을 지냈다. 취임한지 두 달도 되지 않았지만, 벌써 '스키인'이 다 됐다. 한국 스키 현황부터 문제점, 향후 계획까지 막힘 없이 생각을 전했다. 함께 배석했던 협회 관계자들이 첨언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부지런한 성격 답게 직접 스키인을 만나고, 대회를 지켜보고, 꼼꼼하게 파악한 결과다.

김 회장은 "사실 스키는 그저 취미로만 즐겼다. 스키를 탄 지는 오래됐지만, 애들하고 다니는 정도였다"며 "회장이 되고 직접 돌아다니면서 보니까 열정이 느껴진다. 왜 신동빈 회장님이 지금까지 후원하시는지 이유를 알겠더라"고 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학창시절 스키 선수로 활동했을만큼 스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2014년 대한스키협회장으로 직접 취임해, 국가대표 선수들의 기량향상에 힘썼다. 최근에는 롯데 스키·스노보드팀을 창설하기도 했다. 이채운, 그리고 미국 X게임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신동' 최가온(15·세화여중) 등이 롯데의 지원을 받으면서 급성장하고 있다.

김 회장은 "신동빈 회장님이 선수들 이름을 다 알고 계신다. 내가 취임하기 전 일인데, 이채운 최가온 등 선수 후원에 대해 말씀드리기 전부터 그 선수를 알고 계셨다고 하더라"라며 "이 자리에 오면서 '회장님 앞에서 스키로는 잘난 척 하지 마라, 독이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웃음). 그 정도로 관심이 많으시다. 잘난 척 하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지만, 조심스럽게 배우면서, 더 좋은 조직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며 웃었다.

김 회장이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선수들의 훈련 여건 개선이다. 그는 "가장 쇼킹했던 게 유망한 선수들이 훈련할 곳이 없다는 점이다. 전용 훈련장이 없다는데 깜짝 놀랐다. 다른 동계 종목은 전용훈련장이 있다. 진천선수촌에 훈련장을 오픈해서 가봤는데, 체력 단련 훈련장은 있는데, 스키 선수들이 훈련해야 할 슬로프는 아예 없다. 대한체육회에 요청을 했는데, 처음 설계할 때부터 반영이 안돼 있더라"고 안타까워 했다. 이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포기하거나, 슬럼프에 빠진 유망주들도 비일비재하다. 경제적인 문제나 환경적 이유로 성적이 나지 않는 건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평창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이상호의 '배추보이(배추밭에서 연습을 했다는 이유로 얻은 별명)'는 굉장히 슬픈 스토리다. 협회가 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전용 훈련장에 관한 해결책을 이야기하던 중 자연스럽게 강원 정선 가리왕산 스키장으로 이어졌다. 인터뷰 내내 차분한 어조로 말하던 김 회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가리왕산 스키장은 조성 때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올림픽 알파인 활강스키장은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의 표고차 800m 이상, 슬로프 길이 3km 이상, 슬로프 평균 경사각 20도 이상의 지형적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가리왕산은 한국에서 이 조건이 유일하게 충족되는 곳이었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환경단체와의 갈등 속 만들어진 가리왕산 스키장은 국제 스키계의 호평을 받았다. 가리왕산 스키장은 평창올림픽 성공의 숨은 주역 중 하나였다.

문제는 이후였다. 가리왕산 스키장의 운명을 두고 강원도, 정부, 환경단체 등이 각각의 목소리를 내며,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환경 단체들은 생태적 가치가 높은 지역인만큼 국가 정원 조성을 통한 복구를 주장하지만, 존치의 목소리도 크다. 한시적 리프트 운영을 마친 가리왕산 스키장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김 회장은 단호했다. "가리왕산 스키장은 국가적 명물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세계적인 선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스키연맹(FIS) 모두 '세계적으로 볼 수 없는 환상적인 코스'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스키인으로 내 밥그릇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평창올림픽의 레거시이자, 세계적인 브랜드가 될 수 있는 가리왕산 스키장을 한순간에, 그것도 2000억원을 들여 만든 곳을 2000억원을 들여 없애는 것은 낭비고 손실이다."

김 회장이 말하는 해법은 간단하다. "선수들의 전용 훈련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선수들이 해외에서 전지훈련을 하면 한 사람당 1억원 정도가 소요된다. 그렇다보니 모두가 나갈 수 없다. 하지만 국내에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는 장소가 아예 없다. 기존에 있는 스키리조트를 활용하다보면, 훈련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드는데다 여건도 좋지 않다. 세계적인 코스를 활용한다면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동시에 관광 산업과 연계할 수 있다. 세계적인 명소가 될 수 있다. 가리왕산은 경치부터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훈련을 유치하거나, 세계 대회를 개최할 수도 있다. IOC가 동계올림픽 개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기존 시설을 활용하겠다는 뜻을 전하고 있는데, 아시아에서는 한국, 일본, 중국 정도 밖에 안된다. 그 중에서도 가리왕산 스키장은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다. 없앨 경우 향후 올림픽 개최는 물건너 간다고 봐야 한다. 지금까지 쌓은 자산, 특히 올림픽을 통해 만든 평창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사라지게 된다. 관계자들이 깊이 생각해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 결정을 해주셨으면 한다."

한국 스키·스노보드는 당장 강원도에서 펼쳐지는 2024년 동계유스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2년 뒤에는 2026년 밀라노ㆍ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김 회장은 "좋은 선수들이 등장하고 있는만큼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있다. 적극적인 지원을 할 생각이다. 이때를 터닝포인트 삼아 붐업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것이다. '피겨여왕' 김연아 같은 스타를 만들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엘리트에만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니다. 김 회장은 "유소년 저변을 위해, 어린 선수들이 보다 전문적으로 스키나 보드를 탈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생각이다. 어린 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는 대회를 늘리기 위한 협회 차원의 지원도 계획 중"이라고 했다. 엘리트와 생활체육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 "'어게인 2018'을 다시 만들겠다"는 게 김 회장의 청사진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