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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여제'최인정X'휠체어펜싱 신성'권효경,월클 펜서들의 행복 찌르기[창간33주년X진심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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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실제로 보니 너무 예뻐요." "효경이는 생각보다 키가 크고, 너무 귀여워요!"

3월초 햇살이 유난히 따사롭던 봄날 '에페여제' 최인정(33·계룡시청)과 '휠체어펜싱 신성' 권효경(22·홍성군청)이 충북 진천국가대표선수촌 펜싱장에서 마주 했다. 한창 시즌 중, 국제대회 일정으로 분주한 에이스들이 기꺼이 시간을 냈다. 펜싱으로 통한 선후배는 첫 만남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금세 가까워졌다. 권효경이 '새로운 시작'이란 뜻으로 왼팔목에 새긴 나비 타투를 본 최인정이 "기사 봤어요"라며 반색했다. 휠체어 펜싱으로만 봤던 권효경의 선 키가 제법 컸다. 1m71의 권효경과 1m73의 최인정이 나란히 섰다가 나란히 경기용 휠체어에 앉았다. 사진 포즈를 위해 눈을 맞추고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눌 때마다 웃음이 빵 터졌다.

▶'에페 여제'와 '휠체어펜싱 신성'의 만남

최인정은 '펜싱코리아'의 대표 에이스이자 가장 오래, 가장 잘하는 '월드클래스' 여성선수다. 2001년생 권효경의 나이, 스물두 살에 막내로 첫 출전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단체전 은메달을 목에 건 이후 2020년 도쿄올림픽 단체전에서 두 번째 은메달을 따냈고, 지난해 이집트 카이로그랑프리 개인전 금메달, 카이로세계선수권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며 국제펜싱연맹(FIE) 공인 '여자에페 세계랭킹 1위'에 우뚝 섰고, 지난달 28일,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제69회 대한체육회 체육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긴 팔다리와 상대의 박자를 빼앗는 '엇박자' 펜싱, 무한긍정의 마인드가 그녀의 필살기다.

대한민국 장애인체육의 미래, 권효경은 '월드클래스' 왼손 펜서다. 선천성 뇌병변 장애가 있는 권효경은 달리기와 운동을 좋아하는 소녀였다. 계룡 용남중 2학년 때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선배' 김정아 장애인펜싱협회 사무국장의 권유로 휠체어펜싱에 입문했다. 최인정의 소속팀 계룡시청이 있는 바로 그곳에서 칼을 처음 잡았으니 남다른 인연이다. 내성적인 성격이었다는데 피스트에만 오르면 그녀는 거침없는 검투사로 돌변한다. 빛의 속도로 상대를 찔러낸 후 혼신의 힘을 다해 내지르는 '샤라포바' 괴성은 짜릿하다. 2019년 첫 태극마크를 단 후 폭풍성장을 거듭하며 지난해 4월 첫 출전한 국제휠체어절단장애스포츠연맹(IWAS) 브라질 상파울루 월드컵 에페 은메달, 플뢰레 동메달, 6월 태국 촌부리 월드컵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휩쓸었고, 지난해 9월 이탈리아 피사 월드컵 여자 에페 카테고리A에서 '2020 도쿄패럴림픽 금메달' 아마릴라 베레스(헝가리)를 꺾고 우승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세계랭킹 5위에 올라선 권효경은 올해 대한장애인체육회 훈련개시식에서 선수대표 선서를 했다. 올해 10월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 2024년 파리패럴림픽은 그녀의 첫 메이저 무대다. 왼손목에 새긴 '나비'처럼 날아오를 시간이 머지 않았다.

▶'월클' 펜서들의 대화

"경기중 멘탈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요." 3번의 올림픽에서 2개의 은메달, 지난 10년간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금, 은, 동메달을 휩쓴 '백전노장' 최인정에게 권효경이 물었다. 최인정이 답했다. "게임중 이미 지나간 포인트는 생각하지 말고 다가올 미래의 포인트를 생각하려고 노력해. 멘탈이 흔들린다는 건 지금 찔리고 있다는 거거든. 경기는 계속 흘러가는데 과거에 묶여 있어선 안돼. 앞으로 찌를 포인트에 집중하면서 멘탈을 잡는 게 중요해."

이번엔 최인정이 물었다. '국대 4년차' 권효경이 어떤 마음으로 경기에 나서는지 궁금했다. "그 나이 때의 기분이 가물가물해서 그때의 초심을 떠올리고 싶어요." 권효경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저는 국제대회든 국내대회든 늘 '즐겁게 하자, 져도 후회없이 뛰자'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최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만나기 전에 효경이의 경기 영상을 찾아봤어요. 작년 피사월드컵 헝가리 선수와의 결승전과 국내대회 영상들을 봤는데 마음이 몽글몽글해졌어요. 저는 30대 중반이고 가끔 '한계가 여기까지인가'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거든요. 그런데 이 어린 선수는 너무 당차고, 거침이 없더라고요. '내가 내 한계를 미리 정한 건 아닐까' 돌아보게 됐어요. 효경이를 보면서 제가 오히려 많이 배웠어요."

펜싱에서 가장 중요한 '손 기술'도 서로 공유했다. 세계 톱랭커의 손 기술 훈련법을 묻자 최인정은 "손가락 스트레칭을 정말 많이 한다"고 답했다. "제 신조가 '칼끝을 내 손과 같이'거든요. 손끝으로 칼끝을 움직이는 거니까, '손끝 같은 칼끝'을 만들려면 손가락 훈련은 정말 중요해요"라고 강조했다. "효경이도 손이 엄청 빠르던데"라는 선배의 깜짝 칭찬에 후배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전 별로 빠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늘 저보다 더 빠른 선수가 있다고 생각해서… 저도 늘 반복훈련하려고 노력해요."

▶"너의 첫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 응원해!"

최인정은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선수다. 대한체육회 체육대상 수상 직후 "큰 상은 유명한 사람만 받는 줄 알았는데 제가 받게 됐다. 아낌없이 지원해주는 후원사 SK와 대한펜싱협회에 영광을 돌리고 싶다. 앞으로도 대상에 어울리는 선수가 되겠다"는 소감으로 박수를 받았다. 최고의 순간, 겸손과 감사를 잊지 않았다. 선배 최인정의 길은 후배 권효경의 길이다.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를 직접 만나게 돼 영광이었어요. 저도 뇌병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 선수, 인정언니처럼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라며 웃었다. 일단 "올해 첫 종합대회인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 결승 피스트"를 목표 삼았다.

망중한 인터뷰, 서로에게 힘이 된 시간. 이튿날 대회 출국을 위해 떠난다는 선배 최인정이 일주일 후 출국을 앞둔 후배 권효경에게 펜싱검 두 자루와 아껴둔 펜싱가드를 선물했다. "지금 너무 잘 하고 있어. 지금처럼만 자신을 믿고 자신 있게 한다면 좋은 성적 믿어 의심치 않아. 언니가 응원할게!"라는 따뜻한 메시지와 함께였다. "언니도 건강하게, 모든 대회에서 최고의 성적 응원할게요!" '펜싱코리아' 아름다운 나비들이 서로의 힘찬 날갯짓을 응원했다.

'월드클래스' 언니의 기운이 통했을까. 권효경은 지난 16일 IWAS 휠체어펜싱 피사월드컵 에페에서 빛나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진천선수촌=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