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나무, 청소년대표, 후보자 훈련은 국가대표 자격으로 실시하는 훈련이 아니므로 출석인정일수를 초과해 사용할 수 없음."
2023년 새 학기 시작을 앞두고 교육부가 전국 교육청, 일선 학교에 내려보낸 '2023년도 학생부 기재 요령'이다. 교육부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21일 해당 공지를 확인한 대한체육회와 체육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
지난 1월 19일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학생선수 출석인정제 개선방안'를 공식 발표했다. 학생선수가 대회 및 훈련 참가를 위해 결석한 경우 초등학교 20일, 중학교 35일, 고등학교 50일 내에서 '출석인정' 결석으로 처리한다는 내용이다. 좋아하는 운동에 전념하고자 자퇴 후 실업행을 택한 '탁구신동' 신유빈(대한항공) 같은 사례를 막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지난 정부 스포츠혁신위가 권고한 기존 초등 5일, 중학교 12일, 고등학교 25일에서 대폭 확대된 조치에 체육 현장은 환호했다. 지난달 14일 꿈나무 선수들의 손을 잡고 진천선수촌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에 전념하고 세계 일류 선수가 되도록 국가는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그런데 교육부의 '학생부 기재요령 공지' 이후 맘놓고 겨울방학 촌외훈련에 전념해온 학생선수, 학부모들의 민심이 다시 술렁이고 있다.
되살아난 논란의 불씨는 학생선수 출석인정 일수 확대 이면, '국가대표'에 대한 정의다. 국민체육진흥법 제2조에 따르면 "'국가대표선수'란 대한체육회, 대한장애인체육회 또는 경기단체가 국제경기대회에 우리나라 대표로 파견하기 위하여 선발 확정한 사람"이다. 교육부는 이들에 한해서만 초과 출석인정이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초중고 선수 중 법적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선수는 10대에 전성기를 맞는 여자체조 등 일부 종목과 김연아, 박태환급 월드클래스 재능 등 극소수다. 대다수 선수들이 연령별 국가대표, 꿈나무 시절 치열한 훈련과 대회 경험을 통해 시니어 레벨에서 월드클래스 선수로 성장한다. 손흥민도 처음부터 국가대표는 아니었다. 연령별 대표를 거치고, 실전 경험을 통해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며 A대표팀 에이스로 성장했다. 대한탁구협회, 대전시체육회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지난해부터 WTT 국제대회에 10회 이상 출전하며 1년 만에 U-15 세계랭킹 1위에 오른 '탁구신동' 권 혁(대전 동산중)도 국가대표가 아니라, '꿈나무'이고 '세계주니어사이클챔피언'김채연(전남체고)도 국가대표가 아닌 '청소년 대표'다.
대한체육회가 '미래의 국가대표'로 지원하는 '우수' 학생선수들의 경우 일반 학생선수들과 똑같이 연평균 10개 대회(30일), 국외 대회 1~2회(10일), 전국체전, 소년체전 훈련(10일) 등 50일 훈련일수에 더해 체육회의 특별 지원 프로그램을 소화하게 된다. 연 28일 이내의 국내훈련, 연 20일 이내의 국외훈련, 최소 10일 이상의 한일 우수청소년교류전 등이 그것.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우수선수 육성사업 예산으로 국가대표 후보선수(연령제한 없음·1312명) 국내외 훈련, 대회 지원에 110억원, 19세 이하 청소년대표(904명) 지원에 33억7200만원, 만 7~15세 꿈나무선수(846명) 지원에 52억6800만원을 책정했다. 비인기종목 유망주들의 대회 경험 필요성, 지원 요청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미래 자산'을 키우는 우수선수 양성 사업이 교육부의 '출석 인정 불가'라는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장차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메달리스트를 목표 삼은 '초엘리트' 학생선수들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작년까지 대한체육회 우수선수의 동하계 훈련은 학교장 재량에 따라 출석인정 처리가 될 수 있었으나 올해 학생부 기재요령에선 콕 찍어 출석인정 처리가 불가하다고 명시했다. 교육부는 문체부에 보낸 공문을 통해서도 "국가대표에 대한 정의를 관련 법령(국민체육진흥법 제2조)에 따라 엄중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대한체육회에 안내 요청"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방학중 훈련이 원칙이지만 빡빡한 학사, 대회일정으로 인해 방학 중 시행이 불가피할 경우 무단결석을 감수해야 한다. '우수' 학생선수들이 정부 지원하에 마음껏 훈련할 수 있는 길이 막혔다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국가 스포츠 영재'로 선발돼 자랑스럽게 훈련을 받아야할 선수가 무단결석의 당사자가 되거나, 훈련 지원 대상자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주장. 학생선수 출석인정 일수 확대 아래 붙인 '국가대표 단서 조항'이 오히려 톱클래스 유망주들의 훈련을 제한하는 족쇄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다. 국가대표 규정과 관련한 법과 정관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시간이 걸리는 일. 당장 새 학기를 시작할 학생선수들이 문제다.
문체부는 학생선수 출석인정 일수 확대와 관련해 반년 넘게 체육계와 소통하고, 교육계를 치열하게 설득해왔다. 종목별, 연령별 훈련일수를 전수조사, 검토했고 학생선수, 지도자, 학부모 등 체육계 현장 여론을 수렴했다. 청소년 대표, 꿈나무 선수 '일부'가 아닌 전체 학생선수들의 출석인정 일수를 전체적으로 늘리는 방향성을 설정했고, 초등학생 20일, 중학생 25일, 고등학생 50일이라는 결론을 도출, 체육 현장의 호응을 받았다. 진심 어린 현장 소통 행보에 체육인들의 찬사도 이어졌었다. '국가대표 규정' 문제 역시 소통 과정을 거쳤지만 현장 적용 과정에서 문제가 재차 불거졌다. 세상에 100% 완벽한 정책은 없다. 종목별, 선수별, 연맹별로 다 다른 이 스포츠의 다양성을 천편일률적인 '숫자' '일수'로 담아내는 한계도 존재한다. 하지만 학생선수의 꿈을 지키는 일, 스포츠 영재가 세계 일류선수로 성장하도록 아낌없이 지원하자는 정책의 방향성은 하나다. 문체부 관계자는 "체육 현장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문제점에서 시작된 학생선수 관련 정책의 기본은 현장의 목소리를 담는 것이었다. 현장과 계속해서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표했다. 무엇보다 교육부는 미래의 국가대표가 될 꿈나무, 청소년대표들의 발을 묶는 '운동 규제' 정책보다는, 이 스포츠 영재들을 위한 체계적인 맞춤형 학습 커리큘럼과 운동과 학업을 더 잘 병행할 수 있는 학습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편 이 문제와 관련, 28일 대한체육회 대의원 총회에서 유승민 IOC위원(대한탁구협회장)이 "장차 국가대표가 될 청소년대표, 꿈나무의 훈련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했고,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각 부처간 원활한 협의가 필요하다. 이 문제를 3월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 첫 안건으로 올릴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