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스토브리그 때마다 투수들 사이에선 볼멘 소리가 나온다.
타자들과의 금액차 때문이다. 팀 주전급 타자들이 어렵지 않게 억대 연봉에 진입하는 반면, 투수들 중 고액 연봉자를 찾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소위 빈부격차는 스토브리그 때 더 드러난다는 시각. 100억원대 FA 계약이 수두룩한 타자에 비해, 투수는 '대투수' 양현종이 지난해 친정팀 KIA 타이거즈로 복귀하며 4년 총액 103억원에 사인하면서 처음으로 100억의 벽을 깼다. 2023 FA시장에서 17일까지 계약한 내외부 FA중 타자 10명에게 쓰인 총액은 674억원에 달하는 반면, 투수 5명 총액 합계는 75억3000만원이다. 스토브리그 때마다 회자되는 '투수는 거지, 타자는 부자'라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는 풍경.
하지만 능력 있는 투수라면 얼마든지 거금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게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증명됐다.
롯데 자이언츠는 시즌을 마친 뒤 박세웅(27)과 5년 총액 90억원의 비FA 다년계약을 했다. 박세웅이 내년 이후 군 입대가 결정되면 롯데는 2년 간 그를 선발로 활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토종 에이스로 입지를 굳건히 한 박세웅의 기량을 인정한 계약이라는 평가.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와 3점대 평균자책점,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숫자 등 기록 면에서도 박세웅의 가치는 롯데가 충분히 금액을 투자할 만했다.
구창모(25·NC 다이노스)도 잭팟을 터뜨렸다. NC는 구창모와 6+1년 최대 132억원의 비FA 다년계약을 맺었다. 부상으로 지난해 1군 무대에 서지 못했던 구창모는 올해 복귀해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며 부활을 알렸다. 다만 2016년 1군 데뷔 후 규정 이닝을 한 번도 채운 시즌이 없다는 점에서 내구성 문제가 꾸준히 거론돼 왔다. 이럼에도 NC는 건강한 구창모가 보여준 기량, 내년부터 이어질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거치며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 구창모의 가치를 미리 산출해 FA 자격 취득 전 붙잡는 쪽을 택했다. 이제 20대 중반인 구창모에게도 손해 볼 게 없는 조건이다.
그동안 선수들에겐 FA시장이 거금을 쥘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여겨졌다. 하지만 비FA 다년계약이 활성화되면서 포지션에 관계 없이 팀 전력에 도움이 되는 선수라면 FA 자격 전 미리 붙잡아두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력만 있으면 투수도 '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