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카타르)=스포츠조선 김성원 기자]어느덧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가 종착역에 다다랐다. '캡틴' 손흥민(30·토트넘)의 시간이 다시 시작된다.
먼 길을 달려왔다. 어느새 세상은 마스크를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그러나 손흥민은 '선수 인생'을 걸었다. 시계를 한 달도 안된 지난달 3일(이하 한국시각)로 돌려보자. 토트넘에서 '안와 골절' 수술을 발표한 날이다. 왼쪽 눈 주위의 뼈가 부러졌다. 최소 한 달은 안정을 취해야 했다.
손흥민은 일정을 앞당겨 4일 수술대에 올랐다. 대한민국이 우루과이와의 1차전을 20일 앞둔 날이었다. 모든 것이 안갯속이었다. 안와 골절은 시력과 직결된다. 그라운드를 누비는 축구 선수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자칫 제대로 회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칠 경우 실명까지 갈 수 있다.
의학계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손흥민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태극마크가 먼저였다. "1%보다 더 낮아도 가능성만 있다면 그것만 보고 달려갈 것"이라고 했다. "팬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는 말까지 더했다.
그는 기적에 가까운 회복력으로 약속을 지켰다. 우루과이와전(0대0 무)부터 그라운드를 누볐다. 가나와의 2차전(2대3 패)도 풀타임을 소화했다. 그러나 마스크를 쓰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경기 다음날이면 얼굴이 퉁퉁 부었다. 그래도 괜찮다고 했다.
"불편해도 나라를 위해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다. 그런 마음가짐이 통증도 완화한 것 같다." 손흥민의 진심이었다.
더 큰 고통은 시야가 제한되는 점이다. 이는 경기력과도 직결된다.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다. 슈팅과 패스 등 찰나의 순간 선택이 늦다보니 우리가 알던 '쏘니'가 아니었다. 손흥민도 답답했고,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가나전 후에는 "선수들보다 내가 더 잘했어야 했다. 팀을 더 잘 이끌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너무 아프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포르투갈전이 갈림길이다. 16강으로 가느냐, 집으로 가느냐, 두 가지 선택지만 남았다.
대한민국 축구는 카타르에서 기분좋은 추억이 있다. '도하의 기적'이다. 29년 전인 1993년 10월이었다. 당시 아시아에 배정된 월드컵 티켓은 2장이었다. 최종전에서 벼랑 끝에 몰렸다. 자력으로 1994년 미국월드컵 본선 진출이 물건너갔다. 북한에 3대0으로 승리했지만 웃을 수 없었다. 일본이 승리하면 끝이었다.
일본이 2-1로 리드하고 있었다. 절망적이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터벅터벅 걸어나오는 순간 기적같은 소식이 들렸다. 일본이 경기 종료 20초를 남겨놓고 이라크에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하며 2대2로 비겼다. 결국 한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기적적으로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손흥민은 경험한 두 차례의 월드컵에서 모두 좌절했다. 카타르에서도 확률상 마지막 경기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나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것이 희망이다. 4년 전 러시아에선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독일을 상대로 '카잔의 기적'을 연출한 경험도 있다.
대한민국은 3일 0시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H조 조별리그 최종전을 치른다. 포르투갈전, 손흥민의 경우의 수는 단 하나다. 마지막까지 투혼을 불사르는 것이다. 운명은 이미 하늘에 맡겼다. 도하(카타르)=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