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카타르)=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겨울이라고는 하나, 카타르는 참 덥다. 낮에 땡볕에 서 있으면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32도 정도면 괜찮은거 아냐'라고 할 수 있지만, 태양은 너무 뜨겁다.
그냥 있어도 힘든데, 마스크를 쓰면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안간다. '캡틴' 손흥민(토트넘) 이야기다. 이번 대회 내내 지켜보고 있는 손흥민은 안쓰러울 정도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까지 거머쥔, 최고의 선수가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궁금할 정도다. 상대편 스태프가 셀카를 찍으려고 하는 선수가 바로 손흥민이다. 그가 어느 정도의 상태인지 정확하게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토트넘과 대한축구협회가 함께 상황을 공유하고 있지만, 토트넘은 지금, 협회는 과거 상황이라는 사각지대가 있다. 지금 손흥민의 몸상태는 손흥민 밖에 모른다. 경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은 결국 의지의 뜻이다.
손흥민은 대회 내내 많은 것과 싸우고 있다. '에이스'이자 '캡틴'이 주는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괴물' 김민재(나폴리)가 "흥민이형이 이런 압박감 속에서 축구를 해왔구나"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다. 리오넬 메시가 월드컵 우승을 마지막 미션으로 여기는 것처럼, 손흥민도 자신의 시대에 다시 한번 월드컵 16강을 달성하고 싶어한다. 책임감의 이유다. 선수들에게 손흥민은 '캡틴' 이상의 존재다. 선수들은 인터뷰마다 입버릇처럼 '흥민이형'을 올린다. 실제 그렇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가 주는 한마디는 큰 울림이 된다. 선수들이 막힐때마다 찾는 해답이 손흥민이다.
이것만으로도 벅찬데, 부상까지 겹쳤다. 최상의 몸상태로도 쉽지 않은 일을,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해야 한다. 마스크는 그를 지켜주는 존재지만, 또 그를 괴롭히는 존재다. 중계 화면에는 잡히지 않지만, 손흥민은 경기 내내 마스크와 씨름한다. 벗었다 썼다를 반복한다. 마스크를 썼던 선수에게 물어봤다. 얼마나 힘든지를. 답답함이 하늘을 찌르고, 시야 확보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당연히 좋은 판단을 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흘러내리는 마스크를 쓰고, 올렸다 내렸다 벗었다 하면서 경기를 시청해보라고 해보세요. 그런데 손흥민은 그 상태로 90분을 뛰어요. 그것도 세계 정상권의 선수를 상대로. 상상이 가세요?"
우루과이와 가나전, 우리가 알던 손흥민이 아니었다. 몸놀림은 둔했고, 템포는 떨어졌다. 호쾌한 플레이는 온데간데 없었다. 하지만 손흥민의 존재 가치는 충분했다. 손흥민은 90분 동안 상대의 엄청난 집중 견제와 싸웠다. 그가 볼을 잡으면 2~3명이 가로막았다. 볼을 잡지 않을때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손흥민이기에 버텨냈다. 그게 실력이든, 책임감이든, 손흥민은 버텨냈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회가 올 수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까지 우루과이-가나와 싸울 수 있었던 숨은 원동력, 손흥민의 헌신이었다. 100% 회복되지 않았는데도, 몸을 날려 바이시클킥을 하고, 헤더까지 시도한 것, 그가 과연 어떤 의지로 싸우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헌데 안타깝게도 그런 모습이 다 전해지지 않은 듯 하다. 그의 SNS에는 악플로 가득하다. 손흥민은 한마디 내색 없이 싸우고 있는데, 응원은 하지 못할 망정 비난하는 이로 가득하다는게 믿을 수가 없다. 차라리 뛰지 않는게 나을 뻔 했다. 그만큼 위험한 부상, 선수생명을 걸고 뛴 댓가치고는 씁쓸하다. 누구 보다 힘겨울 '우리의 영웅'을 우리가 가장 먼저 나서서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도하(카타르)=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