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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2위 월클'김정준X'20살 신성'유수영,휠체어배드민턴 선후배의 아름다운 시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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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울산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체전 휠체어배드민턴(WH2) 4강전은 사실상의 결승전과 다름없는 빅매치였다. '세계랭킹 2위' 월드클래스 베테랑 김정준(44·울산중구청)의 아성에 '2002년생 신성' 유수영(20·경기도장애인체육회)이 거침없이 도전했다. 1세트를 김정준이 21-19로 가져오는가 했지만 유수영이 2~3세트를 21-8, 21-6으로 연거푸 따낸 후 뜨겁게 포효했다. 결승서 대선배 김경훈을 2대0(21-14, 21-6)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들뻘 후배의 파이팅에 김정준은 "오늘은 안되겠더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지고는 못사는 승부사' 유수영은 '정준 삼촌'과의 맞대결에 진심이다. 김정준은 자타공인 레전드다. 2013~2019년 세계선수권 우승을 단 한번도 놓치지 않았고, 지난해까지 세계랭킹 1위를 지켜왔다. 2017년 신인선수로 발탁돼 라켓을 잡은 유수영에게 '정준 삼촌'은 넘어야할 산이자 롤모델. 1년 전 인터뷰 때 "내년엔 (김)정준 삼촌을 이기는 게 목표"라고 했던 그 다짐대로 그는 올해 초 국가대표선발전에서 김정준을 이기고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후 이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 김정준과 하루 4~5시간 함께 훈련하며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세계랭킹 11위까지 껑충 뛰었다. '월클' 삼촌과 날마다 함께 훈련하는 일을 그는 "행운"이라고 말했다. "지금 세계 1위인 가지와라 다이키(21·일본)도 '정준 삼촌'이 없었으면 지금처럼 잘할 수 없었을 걸요. 벤치마킹할 대상이 없었을 테니까"라며 존경심을 전했다.

유수영에게 김정준을 이긴다는 건 "계단 하나를 밟는 것"이라고 했다. "정준 삼촌은 세계 정상이니까, 그를 이기면 세계 정상에 가까워지는 것"이라는 명쾌한 설명이다. "지금은 이기고 지고 하는 단계죠. 삼촌을 압도적으로 이겨야만 다음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올해 체전까지 총 7번의 맞대결, 유수영은 김정준을 상대로 '3승4패'했다. "국내대회는 선발전 이긴 후 계속 지다 이번 체전서 이겼으니까 2승3패, 국제대회는 2승1패… 총 3승4패, 다음 경기에서 '정준삼촌'을 이겨야 전적이 똑같아져요"라며 눈을 반짝였다. 후배의 뜨거운 승부욕을 '정준삼촌'은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주 좋은 현상이다. 후배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했다.

지난 도쿄패럴림픽 한국 대표팀의 평균나이는 40.5세였다. 김정준은 단, 복식 모두 결승에 올랐지만 단식에선 '일본 신성' 가지와라에게, 복식에선 중국 마이젠펑(32)-취쯔모(20) 조에 패하며 은메달 2개를 획득했다. 국제 무대에서 눈부시게 성장한 10~20대 에이스들을 상대로 체력의 한계를 절감했다. 김정준에게도 '젊은 피' 유수영과의 동행은 큰 힘이 된다. 어린 후배가 폭풍성장하는 종목, 미래가 있는 종목은 행복한 종목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김정준은 "선수촌에서 수영이와 둘이 함께 치는 시간이 제일 많다. 내가 좀 손해다. 이제 기술적으로 숨길 게 없다. 다 들켰다"며 웃었다. "수영이는 성장속도가 빠르다. 하이클리어, 헤어핀도 좋았고, 수비도 정말 좋아졌다. 움직임도 빠르고 신체조건도 좋다"라는 칭찬과 함께 "경쟁자 이전에 좋은 동생이고, 앞으로 대한민국 장애인 스포츠를 빛낼 선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전했다. 하지만 승부는 승부, 호락호락 봐줄 뜻은 전혀 없어보였다. "체력을 더 키우고, 러닝과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지구력 훈련을 좀더 해야겠다"더니 "앞으로 3년은 더 맞붙을 텐데 나도 절대 져주진 않을 것이다"라며 선배의 승부욕을 전했다. "미안하지만 이겨야겠다"는 선배의 선전포고에 유수영 역시 "저도 알아서 잘해봐야죠. 무조건 이겨야죠"라며 패기만만하게 답했다.

11월초 일본서 열린 세계선수권, 유수영은 단식 8강에서 가지와라와 붙었다. 세트스코어 0대2(12-21, 11-21)로 패하며 아깝게 메달을 놓쳤다. 김정준은 4강에서 홍콩 에이스 찬호위엔(세계랭킹 3위)을 2대1(16-21, 21-17, 21-15)로 꺾고 결승에 올라 가지와라를 마주했다. 0대2(12-21, 11-21)로 패했다.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솥밥, 두 띠동갑' 라이벌인 이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내년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 2024년 파리패럴림픽 무대에서 선후배의 시너지로 대한민국 휠체어배드민턴이 정상에 다시 서는 꿈을 꾼다. 내달 8~9일 전북 고창군립체육관에서 펼쳐질 2023년 장애인배드민턴국가대표선발전, 김정준과 유수영의 진검승부는 그 꿈의 시작이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