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용진이 형'이 불러온 나비효과다.
2020년 11월, 이천 2군 구장을 담보로 운영자금을 끌어쓴 두산 베어스가 FA(자유계약선수) 양의지를 영입했다. 두산이 FA 시장에 뛰어들면서 몸값이 폭등했다. 6년에 총액 152억원, 보상금까지 170억원을 투입했다. 2년 전 모기업의 유동성 위기로 지원받을 형편이 안 되자, 290억원을 차입했던 구단이, 이승엽 감독에게 통큰 선물을 안겼다.
선수 잘 뽑고 잘 키워 성적을 내 온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기조다. 이승엽 감독이 "좋은 포수가 필요하다"고 한마디 했을 때, 양의지 영입까지 생각한 야구인이 있었을까. 거기까지 예상했다면 남다른 상상력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양의지 영입에 진심이었던 한화가 제시한 조건이 4년 130억원, 6년 150억원이었다. 두산은 이 금액에 2억을 얹었다. 만약 한화가 양의지 쪽에 160억원을 제시했다면, 162억원이 됐을 것이다.
양의지 계약을 주도한 게 박정원 구단주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합리적인 시장 가격, 구단주가 정하면 적정가다. 공식발표를 앞두고 박 구단주와 이승엽 감독, 양의지가 한 고급 음식점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온라인에 돌아다녔다. 이 사진 한장으로 정리가 됐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 맞다, 정용진 SSG 랜더스 구단주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구단 코칭스태프, 선수,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해 왔다. SNS를 통해 다양한 경험과 의견, 생각을 전달하고 공유해 공감을 이끌어 냈다. 선수, 팬들에게 '용진이 형'으로 불릴 정도로 친근한 이미지를 심었다. 처음에는 파격이었는데,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출범한 SSG는 전략적인 집중투자, 전력보강을 거쳐 최강팀으로 거듭나, 정규시즌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성적뿐만 아니라 흥행까지 성공해 LG, 두산을 제치고 인천 연고팀으로는 최초로 최다 관중을 동원했다. 성적과 흥행, 화제성에서 SSG는 올해 KBO리그 1등팀이었다. 그 중심에 정 구단주가 있었다.
구단주에 따르는 고정관념을 깬 정 구단주의 행보. 팬들은 물론 야구인들은 크게 환영했다.
올해까지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롯데 자이언츠. 시즌 종료 직후부터 빠르게 움직였다. 비FA 투수 박세웅을 5년 90억원 계약 조건에 미리 잡았다. FA 시장이 열리자 포수 유강남과 4년 80억원, 내야수 노진혁과 4년 50억원에 계약했다. 작정한 듯 갑자기 '큰손'으로 등장해 공격적으로 파고들었다.
이 또한 SSG, 정 구단주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지난 해 정 구단주는 '유통 라이벌'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야구를 잘 모른다며, 관심을 촉구했다. 대단히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정 구단주 표현대로 '도발'이 있은 후 신 구단주가 롯데의 잠실 원정경기를 관전했다. 무려 6년 만에 야구장을 찾았다. 신 구단주는 올해 두 차례 롯데의 홈구장 사직야구장을 방문했다.
구단주가 관심을 가지면 성적을 내야 한다. 롯데는 1992년 두번째 우승 후 30년간 정상에 가보지 못했다. 출범 2년 만에 우승한 SSG와 극명하게 대비가 된다. 더구나 상대가 유통 맞수다. 정 구단주의 '도발', SSG 우승이 롯데를 자극해 전력보강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게 다 '용진이 형'이 불러온 나비효과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