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빛이 있는 곳엔 반드시 그늘이 존재한다. 지금 스토브리그를 휘몰아치고 있는 '포수 광풍'의 그림자가 그렇다.
양의지는 이제 KBO리그 역사상 가장 성공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두번의 FA로 '초대박'을 쳤다. 4년전 첫 FA 당시, 두산 베어스에서 NC 다이노스로 이적하면서 4년 125억원의 계약을 했고, 두번째 FA였던 올해는 다시 두산으로 컴백하면서 4+2년 최대 152억원에 도장을 찍었다. 역대 FA 최고 금액 기록이고, 양의지는 두번의 FA 누적 금액 277억원을 기록하며 이 부문 기록 역시 갈아치웠다. 물론 4년 후 '+2년'과 인센티브가 포함된 금액이라, 전액 보장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계약 규모만 놓고 봐도 입이 떡 벌어지는 조건이다.
양의지는 단연 KBO리그 최고의 포수다. 투수들을 리드하는 능력과 포수로서의 수비력 그리고 숱한 경험까지.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처럼 실제 팀 성적 역시 양의지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기 때문에 그는 좋은 포수로 평가 받는다. 더군다나 양의지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공격력이다. 역대 최고의 포수로 꼽히는 박경완보다 타격 성적이 더 빼어나다. 양의지는 올 시즌을 포함해 통산 타율 3할을 기록 중인 포수다. 주전 포수이면서 4번타자로도 뛸 수 있다는 게 그의 장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의지 역시 나이를 먹고 있다. 1987년생인 그는 내년이면 만 36세가 된다. 4년이 지나면 39세, 두산과 계약한 6년을 모두 채운다면 마흔을 넘긴다. 포수들의 전성기는 짧을 수밖에 없다. 몸을 갈아가며 마스크를 쓰기 때문이다. 수비 자세 때문에 무릎이나 허리 통증도 고질적이고, 기량이 꺾이는 페이스도 빠르다. 그래서 양의지나 강민호처럼 '롱런'하는 정상급 포수들의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냉정한 미래 가치로 봤을 때, 양의지의 계약이 기존의 평가를 뛰어넘는 고액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그 배경이다. 몇년 후면 마흔이 되는 양의지보다 더 나은 포수가 없다. 심지어 올해 FA 시장에 양의지보다 더 어린 주전급 포수들이 함께 자격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의지가 최고 금액의 주인공이 됐다. 그만큼 리그에 '빼어난 포수'가 없다는 반증이다. 양의지를 노린 팀은 원 소속팀 NC와 계약에 성공한 두산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구단들도 설령 적극적 오퍼는 못했을 지라도 관심은 있었다. '양의지를 데려올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은 공통적이었다. 왜냐면, 지금 보유하고 있는 포수들 가운데 양의지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포수가 냉정히 없기 때문이다.
리그 전체적으로 둘러봐도 다르지 않다. 국가대표 주전 포수 역시 양의지다. 내년 3월에 열리는 WBC에서도 양의지가 주전 포수로 국가대표팀 마스크를 쓸 것이고, 아마 그 다음해에도 변수가 없다면 양의지가 나가야 할 가능성이 크다. 리그에서는 통탄할 일이다. 양의지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양의지나 강민호처럼 최고 대우를 받는 베테랑 포수들. 그리고 그들을 위협할만 한 20대 젊은 거물급 포수들이 성장해줘야 하는데, 아직까지 두드러지는 선수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번 FA 시장을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는 다수의 관계자들은 "좋은 포수들인 것은 맞는데 정말 이 정도 금액을 받을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워낙 좋은 포수들이 귀하다 보니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다. 시장 논리다. 앞으로는 20대 초중반 젊은 포수들이 치고 올라와 분위기를 바꿔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현장에서도 생각해볼만 한 이야기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