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사일(카타르)=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 "사우디아라비가 조별리그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우리는 그런 생각과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프랑스 출신 에르베 르나르 사우디대표팀 감독의 '매직'이 통하자 대이변이 연출됐다. '우승후보' 아르헨티나를 꺾었다.
사우디는 22일(한국시각) 카타르 루사일의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2022년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C조 1차전에서 전반 10분 만에 리오넬 메시에게 페널티킥 선제 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3분 살레 알셰흐리 동점골, 후반 8분 살렘 알-다우사리의 결승골에 힘입어 2대1로 역전승을 거뒀다.
'르나르표 그물망 수비'가 아르헨을 질식시켰다. 아르헨은 전반 3분 만에 비디오 판독(VAR)을 통해 메시가 페널티킥 선제 골을 터뜨린 뒤에도 추가 골을 넣기 위해 '닥공(닥치고 공격)'을 펼쳤다. 그러나 야세르 알-샤흐라니, 알리 알 불라이히, 하산 알탐바크티, 사우드 압둘하미드로 구성된 포백 수비는 라인을 중앙선 가까이 끌어올려 미드필드진과의 간격을 좁혀 아르헨티나의 공격수들이 오프사이드에 자주 걸리게 만들었다. 이 전략은 수비 뒷 공간이 넓어 상대에게 킬 패스를 얻어맞으면 대책없이 뚫릴 수밖에 없었지만, 사우디 포백수비는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조직력으로 돌파를 시도하던 메시를 비롯해 라우타로 마르티네스, 앙헬 디 마리아를 '오프사이드 트랩'에 가뒀다.
이날 아르헨티나는 르나르 감독의 오프사이드 전략에 제대로 당하면서 전반에만 3골이 취소됐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10개의 오프사이드를 당하며 무너졌다. 르나르 감독은 사우디가 아르헨티나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뒤진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을 만들었다. 이어 이 전략을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100% 실현해내면서 대회 초반 최대이변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르나르 감독은 한 때 A대표팀 사령탑 후보에 올랐던 인물이다. 2018년 여름, 대한축구협회가 파울루 벤투 감독을 영입할 때 르나르 감독과 사전 접촉했었다. 그는 당시 모로코를 지휘했고, 아프리카 올해의 감독상을 받기도 했다. 결국 대한축구협회와 협상이 성사되지 않았고, 이후 2019년 모로코를 떠나 사우디 감독으로 부임했다.
사실 도박사들, 그리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의 완승을 전망했다. 제법 큰 점수차가 날 것이라는 예상까지도 나왔다. 객관적인 전력차를 고려한 판단이다.
르나르 감독은 아르헨티나전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담담하게 각오를 밝혔다. 르나르 감독은 "월드컵에선 이변이 일어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를 매우 약한 팀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개의치 않는다. FIFA랭킹도 그렇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의 FIFA랭킹은 3위이고, 사우디는 51위다.
르나르 감독은 모로코대표팀을 지휘하던 시절이던 2019년 아르헨티나와 친선경기를 한 차례 했었다고 회상한다. "당시 매우 인상 깊었다. 아르헨티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팀 중 하나였다. 아르헨티나 스칼로니 감독은 굉장한 일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준비를 했다"던 르나르 감독은 "메시는 축구 레전드다. 우리는 아르헨티나의 다른 선수들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최고 레벨에 있는 선수들이다. 여기에 와 있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또 메시 또는 호날두 같은 선수들과 싸울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르나르 감독은 낮은 자세로 아르헨티나전을 임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우승후보'를 무릎 꿇게 만든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있었다. 벌써부터 르나르 감독이 멕시코, 폴란드와 남은 조별리그 경기를 어떤 전략으로 치를지 관심이 모아진다. 루사일(카타르)=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