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카타르)=스포츠조선 김성원 기자]어디든지 죽이 잘 맞는 '짝'이 있다. 월드컵대표팀도 마찬가지다.
4강 신화를 이룬 2002년에는 홍명보-황선홍, 두 고참이 있었다.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한 2010년 남아공에는 '젊은 쌍용' 이청용-기성용이 윤활유 역할을 했다. 둘다 동년배 조합이었다.
2014년 브라질에선 원조 '톰과 제리'가 사랑받았다. 김신욱과 손흥민이다. 김신욱이 손흥민보다 네 살 많았지만 툭하면 아웅다웅해 '톰과 제리'라는 별칭이 붙었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 서른 살 '캡틴' 손흥민(토트넘)은 어느덧 고참이 됐다. 벤투호에선 김영권(32·울산) 김승규(32·알샤밥)와 함께 최다인 3회 연속 월드컵 무대를 밟는다. 세계가 인정하는 설명이 필요없는 그라운드의 리더로 우뚝 선 이젠 '톰과 제리'의 향수는 없다. 후배들에게 월드컵이 어떤 의미의 무대인지를 상기시킬만큼 '중후한 멋'을 뽐낸다.
8년 전 김신욱-손흥민 라인을 대체할 새로운 '단짝'이 벤투호에 생겼다. '괴물' 김민재(26·나폴리)와 '날아라 슛돌이' 이강인(21·마요르카)이다. 티격태격하지는 않지만 마치 제2의 '톰과 제리'를 보는 듯 오묘한 관계가 형성됐다.
'경상도 사나이' 김민재는 구수한 사투리에 목소리 또한 우렁차다. 서열상 대표팀 허리인 그는 '군기 반장'이다. 훈련장이 쥐 죽은 듯 고요하자 "운동장이 왜 이리 조용하노"로 모두를 녹여버린 바 있다.
김민재는 도하에서도 최고의 '흥'을 자랑한다. 맨 앞에서 훈련을 이끄는 것은 기본이다. 훈련장에 정적이 감돌면 목소리를 높인다. 타깃이 바로 유일한 2000년대생인 이강인다. "강인아, 파이팅하자!"
그러나 이강인은 예사롭지 않은 '막내'다. 스페인에서의 오랜 생활로 사고 방식이 유럽파다. '나이가 깡패'라는 말은 이강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김민재가 소리를 지를 때면 화답은 해도 표정이 흥미롭다. 입가엔 장난기 머금은 미소가 잔뜩 흐른다.
둘의 '역사'는 이미 있다. 베이징 궈안 시절 불렸던 '김민짜이'는 김민재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다. 한데 이강인이 자신의 SNS를 통해 조용히 도발했다. '김민자이'라며. 김민재가 "선 넘었다"고 했지만, 그 선은 요즘에도 자주 넘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재밌다.
'단짝' 김민재와 이강인도 우루과이와의 1차전을 앞두고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세계적인 센터백으로 급성장한 김민재는 고참들이 있지만 어엿한 수비라인의 리더다. 김민재가 뚫리면 답이 없다.
9월 A매치에서 외면받은 이강인은 최종엔트리 승선조차 불투명했지만 어느새 '히든카드'로 떠올랐다. "기술이 상당히 좋은 선수다. 여러 부분에서 발전을 보였기에 선발했다"고 한 파울루 벤투 감독은 도하에서 이강인과 다정하게 얘기하는 장면이 포착돼 '화제'가 됐다. 조규성(24·전북)도 "강인이의 킥이 좋은 건 모두가 알고 있다. 나도 받아봐서 잘 알지만 날카롭고 볼의 움직임이 빨라 잘 준비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가치가 상승했다.
김민재와 이강인, '단짝 반란'이 기대되는 카타르월드컵이다. 도하(카타르)=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